목록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183)
En Hakkore
노아의 믿음 4(히 11:6,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 점은 5절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 준다. 우리가 이 땅 위에서 행해야 할 의무들을 가지고 있음과, "어떻게" 의무들을 감당해야 할지를 시사하고 있다. 곧 믿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구절은, 이 의무들을 감당하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 뗄 수 없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영혼의 "구원"은 아직 미래에 속한다. 히브리서 10:39에서 "구원" 이라는 명사형을 쓰지 않고 "구원에 이르는" 동사형을 쓰고 있음을 주목하라. 베드로전서 1:5을 참조하라..
노아의 믿음 3(히 11:6,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사도는 이제 6절에서 말한 것을 예증하는 구체적인 실례를 제시한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노아 시대의 세상을 다루신 방법은, 모든 세대의 세상을 어떻게 다루실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표본과 표증이었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시니, 그는 역시 자기를 멸시하는 모든 자들에게 복수하시는 자라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하나님께서는 옛 사랑을 멸망시키실 때 죄에 대한 불쾌하심을 보여 주셨다(욥 22:15, 16). 노아를 보전하심을 통해서는 자기 자신의 백성들의 특권들을 명백히 나..
노아의 믿음 2(히 11:6,7) 성경에 계시된 그의 존재와 성품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갈 뿐 아니라, 특히 믿음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붙잡는 것이다. 곧 그 분은 "상 주시는" 사실을 포착해야 한다. 하나님을 "상 주시는 이"로 믿는 행위는, 하나님께서는 풍성하신 방식으로 궁핍한 죄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의향을 기꺼이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포용하고 예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스스로 제한하신 것에 부합한 방식으로 죄인들을 향하여 모든 일을 행사하실 것임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다.♥ 탕자로 하여금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촉구했던 것은 바로 그 점에 대한 인식(자기의 궁핍에 대한 인식에 더하여)이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바램이 없으면 기도..
노아의 믿음 1(히 11:6,7)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11:6,7) 이제 관심을 집중시키려는 구절들은 결코 쉽지 않은 구절들이다. 특히 하나님의 은혜와의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지 못한 목회자들의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하나님의 값없는 은총을 강하게 강조하고 하나님의 '요구를' 크게 무시하는 곳, 특권들은 강조되고 의무들은 거의 게을리 여겨지는 곳에서는 많은 성경들을 바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참으로..
에녹의 믿음 5(히 11:5,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사도는 방금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결과로 옮기워졌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제는 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다는 사실로부터 그의 믿음을 증거한다. "그러나" 라는 반의 접속사가 사용된 것은 하나의 추론을 하기 위한 것이다. 논증은 이렇게 구성된다. 곧 하나님께서 친히 에녹을 옮기셨다. 에녹은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러므로 에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옮기워졌다. 그것이 바로 논증의 순서이다. 그래서 6절에 있는 이 선언은 5절 마지막 소절과 특별한 관계를 가진다. 6절의 논증은 그 정반대가..
에녹의 믿음 4(히 11:5,6)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 믿음이 어째서 그처럼 약하며, 세상에 있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 그처럼 강한 사슬로 역사하시는지를 그 점이 잘 설명해 주지 않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기뻐하심에 아주 냉담한 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크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먼저 매일 모든 범사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부지런히 기도하면서 추구해야 한다.♥ "옮겨진" 삶을 체험하려면 이 점은 절대적인 진수다. 우리는 이 진리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가능한 반대 주장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옮겨진 삶 - 이 세상의 음침한 무덤의 가운데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계속적인 믿음의 역사..
에녹의 믿음 3(히 11:5,6) 이제 우리는 4절과 5절을 함께 연결하여 그것들이 가진 "교리적" 의미를 관찰하기로 하자. 죄인이 하나님께 복종하여 그리스도의 제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재판하는 심판장 되신 하나님에 의해서 의롭다고 선언받았을 때, 그 사람은 영생의 후사가 되며, 죄와 사망은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죄와 사망이 더 이상 그에게 어떤 법적 요구를 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로 여기서 그 점을 예증하고 있다. 아벨 뒤에 언급된 바로 그 성도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졌다. 그럼으로써 "죽음"의 권능이 그리스도인에게 대하여는 무산되었음을 증거하였다. 어린 양의 피로 말미암아 첫번째로 구원받은 죄인(아벨)과, 땅에서 하늘로 옮기어진 구원받은 죄인 사이에는 아무런 차..
에녹의 믿음 2(히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아벨의 경우는 믿음 생활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여 준다. 에녹의 경우는 믿음 생활이 어떠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 내용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 11:4을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4장으로 거슬러 올라갔듯이, 이 본문을 비추어 줄 등불을 발견하기 위해서 창세기 5장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여기서 우리는 신자의 새 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발견한다. 에녹은 그 전에는 "이 세상 풍속을 따라 행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