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48]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48]

En Hakkore 2024. 6. 1. 20:03

에녹의 믿음 2(히 11:5,6)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아벨의 경우는 믿음 생활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를 보여 준다. 에녹의 경우는 믿음 생활이 어떠한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그 내용을 보여 준다. 히브리서 11:4을 이해하기 위해서 창세기 4장으로 거슬러 올라갔듯이, 이 본문을 비추어 줄 등불을 발견하기 위해서 창세기 5장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심으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 여기서 우리는 신자의 새 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임을 발견한다. 에녹은 그 전에는 "이 세상 풍속을 따라 행하였다"(엡 2:2).

그 자신의 "방식"으로 행하여 자신을 기쁘게 하였다(사 53:6). 또한 장래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께 대하여 화해하였다"(고후 5:20).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는가?"(암 3:3).

"행하다"는 말은 영적인 일에 있어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며 부단히 진행해 나감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삶을 하나님께 복종시킨다는 요지를 가지고 있다. 또 하나님에 의해서 삶이 통제를 받으며, 하나님을 위해서 삶을 영위한다는 뜻을 가진다.♥ 우리가 다루는 현재의 본문이 바로 그 점을 가리킨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받는 자는 누구든지, 성경구절의 "영적 원리"를 발견하여 그것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시키는 은혜를 구하려면, 곁에 나타난 것보다 더 깊은 이면을 바라봐야 함을 명백히 알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역사적인 사실로만 국한시켜 말한다면, 내 궁핍한 영혼에 하등의 힘을 주지 못한다.

수천 년 전 이 땅 위에서 살던 어떤 사람이 죽음을 당하지 아니하였다는 단순한 사실이 놀라움을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실제적인 도움을 하나도 주지 않는다. 독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읽은 성경 각 부분에 대하여 이러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내가 이 지상에 있는 동안 나에게 도움을 줄 만한 것이 무엇이며, 그 실제적인 가르침은 어떠한 것인가? 그것은 언제나 순간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기도와 인내와 묵상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가 다루는 본문이 오늘날 가지는 우리를 향한 실제적인 의미와 에너지를 확인하려는 목적에서 이 본문을 "연구"해 나감에 있어서 사려깊은 숙고자가 주목할 첫번째 요점은 "옮겼다"는 말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그 말이 한 구절에서 세 번이나 사용된다는 점이 이 구절을 푸는 열쇠가 된다.

어원학적인 의미에서 "옮겼다"는 말은 "나르다, 옮기다, 이 곳에서 저 곳으로 바꾸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 점은 대번에(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속에서 풍성하게 거하고 있으면) 골로새서의 말씀을 생각나게 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현재 하나님 앞에 서있는 위치와 상태에 대한 장엄함을 가리킨다. 그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웠다"(요 5:24).

이제 이 사실을 힘입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의무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실제적인 경우와 체험에서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특권이며 의무이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고 행한 것에 비례하여 그러한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보다"는 말은 맛보거나 체험한다는 뜻을 가진 말이다. 에녹은 죽음에 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사상을 통제하지는 말자. 에녹이 땅에서 하늘로 "옮기워진" 사실은 육신적인 차원에서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말이 무덤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죽음"은 죄의 삯이요, 어긴 율법에 대한 저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운 저주 아래 있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죽음은 세상에 있는 모든 것에 분명하게 찍혀져 있는 인장과 같다.

그러나 믿음이 역사할 때 영혼은 이 세상 장막보다 더 높이 들림을 받고, 그 은총을 입은 자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할' 능력을 받게 된다. 히브리서 11:1을 숙고할 때 알았듯이, 장래 일을 가까이 실감하게 하고, 육신적인 눈으로 볼 수 없는 일들에 대한 증거를 얻고 누리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믿음으로 행하는 것만큼, 마음은 이 가련한 세상보다 높은 차원으로 '옮기어진다'.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맛보게 된다.(빌 3:10).♥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294

내 영혼을 깨우는 복된 주일되시기 바랍니다.샬롬!

'강해시리즈 > 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카테고리의 다른 글

[Hebrews 50]  (0) 2024.06.01
[Hebrews 49]  (0) 2024.06.01
[Hebrews 47]  (0) 2024.06.01
[Hebrews 46]  (0) 2024.05.30
[Hebrews 45]  (0) 2024.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