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Hebrews 53] 본문

강해시리즈/히브리서 강해 (An Exposition of Hebrews)

[Hebrews 53]

En Hakkore 2024. 6. 1. 20:05

노아의 믿음 2(히 11:6,7)

성경에 계시된 그의 존재와 성품에 따라 하나님께 나아갈 뿐 아니라, 특히 믿음은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붙잡는 것이다. 곧 그 분은 "상 주시는" 사실을 포착해야 한다.

하나님을 "상 주시는 이"로 믿는 행위는, 하나님께서는 풍성하신 방식으로 궁핍한 죄인에게 자신을 드러내실 의향을 기꺼이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포용하고 예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스스로 제한하신 것에 부합한 방식으로 죄인들을 향하여 모든 일을 행사하실 것임을 마음으로 이해하고 믿는 것이다.♥

탕자로 하여금 그러한 행동을 하도록 촉구했던 것은 바로 그 점에 대한 인식(자기의 궁핍에 대한 인식에 더하여)이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바램이 없으면 기도하는 것은 전혀 소용이 없다.

그렇듯이 마음 속에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은혜롭게 영접하실 것이라는 그의 긍휼에 대한 기대감이 우러나지 않는다면, 어떠한 죄인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의 약속을 붙잡는 것이다.

성경에서, 특권들은 그 나름으로 필요한 제약조건들을 갖고 있다. 의무조건에서 보상을 분리시켜버리면 진리의 전 체계를 망가뜨리는 결과가 된다. 우리 편에서 행해야 할 일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상 주시는 이"이시다. 그러면 누구에게 상 주시는가?

"열심히 그를 찾는 자들에게" 주신다. "악인이 음부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열방이 그리하리로다"(시 9:17). 악인은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그의 면전에서 추방하실 것이다.

"부지런히 자기를 찾는다"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을 찾는 것은 자신을 잊어버리고, 부인하고,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우리를 통치자로서 하나님만을 인정하며, 하나님을 만족스런 우리의 분깃으로 여긴다 함이다.♡

그를 "부지런히" 찾는다는 것은 그를 간절히(잠 8:17), 전심으로(시 119:10), 열심히(시 27:4), 지치지 않고(눅 11:8) 찾는다는 것이다. 갈증을 느낀 사람이 물을 어떻게 찾는가?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렘 29:13; 대하 15:15은 참조).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찾는 자들에게 "어떻게" 상 주시는가? 세움받은 중보자를 통하여 인내하면서, 간절히, 신실하게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는 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은혜롭게 드러내심으로써 상 주신다. 또한 그의 은총을, 자기를 진정으로 찾는 자들에게 실제로 부여하심으로써 상 주신다. 마치 탕자에게 하듯이 말이다. 또한 그들의 죄를 용서하고 그들의 불의를 도말함으로써 상 주신다(사 55:7).

그들의 마음에 그의 법을 기록하여, 모든 우상을 버리고 그만을 섬길 마음의 소원과 결심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상주신다. 또한 그들이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께 열납되어 양자가 되었다는 확신을 주시고, 하늘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안식과 복락에 대한 달콤한 첫 열매의 맛을 허락하신다. 또한 영적인 것이나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심으로써 상 주신다.

끝으로 그들을 하늘로 데려가심으로써 상 주신다. 그들은 거기서 하나님의 은혜의 기이한 부요를 거침없이 누리면서 영원토록 지낼 것이다. 그러나 "상 주시는 이"라는 말이 율법주의자들을 옹호하는가? 바르게 이해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부지런히 찾는다"는 것이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권리를 주는 공로적인 것이라는 의미가 아닌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러면 그 말은 무슨 말인가?

첫째, 우리는 도움을 주는 죤 오웬의 주석에서 인용해 보기로 한다. "사도가 이 말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 것, 또한 여기서 요구되는 믿음의 터이기도 한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 주신 계시에 내포되어 있다.

'아브라함아 두려워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과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상급이기도 하다. 바로 그 점은 그렇게 상받은 어떤 사람들의 생각 속에도 영원토록 공로의 개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한다.

누가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상을 받을 만한 공로를 행할 수 있는가? 하나님 안에서 상 주신다는 것, 특히 하나님께서 친히 상급이 된 경우에는, 그 행동은 무한한 은혜와 풍성함의 행동이다. 그리고 이 점은 여기에서 가리키는 믿음의 대상에게 우리의 온 시선을 집중케 한다.

곧 자기에 대한 약속을 통하여 계시하시고 무한한 선하심과 풍성함으로 믿는 자들에게 친히 상급 되신(그들의 하나님이 되신) 이른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께 온전한 시선을 집중케 한다. 사도가 여기서 선언하고자 하는 제안은,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롬 4:4). '은혜' 자체가 "상급도" 된다는 분명한 암시의 말씀이 아닌가? 은혜와 상은 결코 모순되지 않는다. 만일 모순된다면 하나님의 높으신 주권과 인간의 진정한 책임성 사이에도 모순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또한 그리스도가 "종"이셨다는 사실(사 42:1)과, 그리스도가 "주"가 되신다는 사실(요 13:13) 사이에도 모순이 존재하게 될 판이다. 골로새서 3:24의 어투는 태양광선처럼 이 점을 명백하게 밝혀 준다.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유업"은 하늘 자체이다. 곧 구원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원이 값없는 은혜가 아닌가? 당연히 값없는 은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값없는 은혜의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그 구원을 "사야" 한다(사 55:1). 그것도 "값없이" 산다. 구원은 "은혜"이면서 "상급"이다.

하늘을 죄인이 공로로 얻어들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게으른 자들과 방종에 빠진 자들에게 하늘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도 동등하게 사실이다. 하나님은 "부지런히 찾아야" 되는 분이다. 영혼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고뇌해야 한다(눅 13:24).

우리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요 6:27), 하늘의 안식에 들어가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히 4:11). 그렇게 노력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상 주신다. 그 노력이 공로가 되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인정하시고 그 노력을 가상히 여기사 상 주시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섬길 때 '상받을 것"을(히 11:26) 전혀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 주절은 그러한 자들의 가르침을 논박한다. 왜냐하면 사도는 노골적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믿어야 할 진리의 필요한 부분으로 그 점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하늘 또는 완성된 구원이 "상급"으로 언급된 것은, 그 구원을 받을 사람들의 성품을 시사하기 위한 것이다. 즉, 부지런히 애쓰는 자들임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둘째로, 우리의 일을 끝마치기 전에는 그 완성된 구원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딤후 4:7,8).

셋째, 그 구원의 확실성을 시사하기 위함이다. 정직한 상전에 의해서 고용된 일꾼처럼 그 구원을 확실하게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약 11:16; 고후 4:17). 모든 참된 경건이 부요하게 보상을 받는 것은 내생에서이다(막 10:29, 30).

그렇게 보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는 "근거"가 그리스도의 무한한 공로이며, 그 자신의 약속에 입각해서 상을 주신다는 말을 부연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가 "주시는" 상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그의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조금도 우리 자신을 자랑할 수 없다.♥

Arthur W. Pink 히브리서 강해 II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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