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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에필로그_장문] 창세기를 마치며...

En Hakkore 2024. 3. 23. 11:44

사실, 5월부터 시작한 창세기는 약 6개월 분량의 내용이었지만, 장맛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6월 끝자락에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일찍 마무리하고 계속 연계된 성경을 찾아보면서 묵상하고 되새김질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나타난 인물들의 모형속에서 원형 예수그리스도를  볼 수 있지만, 특히 요셉은 그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 사이에서 최소한 100가지 이상의 유비점(類比點)을 추적할 수 있는 것으로 정리해 나가며 창세기는 종료되는데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당초 에필로그를 쓸 생각은 없었지만, 묵상하는 가운데 다시 한번 창세기 본문을 정독해서 읽으며, 지금도 살아 역사하시는 엘샤다이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심속에 지나온 과정을 요약해보며 제 자신을 되돌아보고 나를 이곳에 있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창세기를 통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가 완전했음을 알게되는 증거를 숫자로 상세히 보여주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창세기 1장 1절은 7개의 단어로 되어 있으며, 그것은 모두 28개의 알파벳으로 구성되어 있다. 28은 7에 4를 곱한 숫자이다. 7은 완전을 나타내는 숫자이며 4는 창조를 나타내는 숫자이다.(3은 성부,성자,성령 4는 동서남북으로 알고 있지요. 온 세상에 두루 편만해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아담의 타락의 결과를 통해 마지막 심판 때도 이와 같을 것이라는 것을... 두렵고 떨림으로 영화(靈化)의 단계까지 나의 구원을 이루어가야 함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타락의 결과 네 가지는 첫째로, 자신에게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의식하는 것, 둘째로, 자기의 수치를 자기 자신이 만든 덮개로 가리려고 애쓰는 것. 셋째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 앞에서 숨으려고 시도하는 것. 그리고 넷째로,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대신 그에 대해 핑계를 대는 것.

창세기를 통해서,
피어슨(Dr. Pirson)이 표현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된 삼중적인 존재임을(살전 5:23), "영은 하나님을 의식(意識)하는 좌소(座所)이며, 혼은 자아를 의식하는 좌소이며, 몸은 감각을 의지하는 좌소이다"고 말한 것처럼 나의 존재됨을 다시 생각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죄를 범하는 순간, 육체의 죽음은 영이 몸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이지만, 영의 죽음은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임을, 아담이 죽었을 때, 그의 영은 소멸되지 않았고 다만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을 뿐임을. 바로 이것이 타락임을 깨닫게 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흐르는 메시야 예언의 놀라운 강(江)줄기를 보게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사람은 중보자 없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위대한 진리를 배우게 해주심도 감사합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사람은 오직 희생제물의 방법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나아가고 또 예배할 수 있으며, 아벨이 부모로부터 하나님을 만나는 특정한 장소와 때와 방법에 대해 가르침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사랑하는 다음세대에게 분명히 바르게 가르치고 본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히 11:4)

창세기를 통해서,
다시금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미래까지의 '구원의 소중함'도 생각합니다. 삼중 구조 즉 우리의 영과 혼과 몸 전체를 포괄하는 구원이며(살전 5:23). 또 우리의 구원은 우리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받았으며,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받고 있으며, 장차 죄의 실재로부터 구원받을 것이라는 의미에서 삼중적인 구원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악이 가득한 시대에 살았지만,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과 동행한 매우 특별한 사람 에녹.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walk) 하겠으며..." 에녹은 어느 정도 하나님과 함께 걷다가 그만두기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는 300년 동안 꾸준히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 일상의 매순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민감하게 반응하며 순종의 길을 걷도록 도와주소서!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1-24).

창세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성품, 즉 그의 오래 참으심을 다시 되새깁니다(벧전 3:20, longsuffering of God waited in the days of Noah).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했던 자"의 믿음과 의를 생생하게 부각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노아가 살았던 시대는 어두운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5-7).

창세기를 통해서,
구약의 일곱 개의 언약 중, 세 가지의 언약을 심도있게 살펴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분과의 언약이 지금도 동일하게 나 자신에게도 적용되고 있음도 고백하며 감사합니다.

첫째로, 금지된 나무의 열매를 먹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사람이 계속해서 에덴 동산을 향유하는 것과 관련한 아담 언약
둘째로, 땅과 사계절이 계속될 것과 관련한 노아 언약.
셋째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땅을 차지할 것과 관련한 아브라함 언약.
넷째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계속적으로 향유하는 것과 관련한 모세언약
다섯째로, 제사장직이 레위 지파에 계속될 것이라는 약속과 관련한 레위언약.
여섯째로, 이스라엘의 왕권과 관련한 다윗언약.
일곱째로, 천년왕국과 관련한 메시야 언약 혹은 새 언약.

창세기를 통해서,
아브라함을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로부터 뽑아내시고, 그를 선택받은 나라의 조상으로 삼으실뿐 아니라, 이스마엘을 버리시고 이삭을 부르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구원의 진리를 생각하며 그분을 찬양합니다. 또한 없는 것을 있게 하시는 '엘 샤다이' 하나님만 바라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의 인생을 살펴보면서 그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분의 주권적인 은혜이며, 값없이 베풀어지는 은혜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은혜임을...그래서 그 은혜를 저도 덧입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창세기를 통해서,
이스마엘이 13살이었을 때, 어렵게 이삭을 얻은 아브라함은 직접 그의 손으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받았다. "네 자신이 제사장이 되라. 네가 직접 네 아들을 번제로 드려라." 아브라함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요구였다. 뿐만 아니라 사흘간의 여행, 이삭은 나무를 지고 자신은 칼과 불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희생제물인 줄도 모르고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라고 묻는 아들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 질문...

이 모든 것은 진실로 사람이 감당하기에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명령앞에 순종으로 반응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심을 감사합니다. 특히 창세기 22장의 사건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사실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우리 앞에 불신자들과 다른 멍에를 메지 않고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한 것에 대한 두려운 결과를 보여 주는 엄숙한 표본으로서 제시되는 롯을 통한 실패를 거듭하지 않게 세 가지를 일러주셔서 두렵기도 하고 감사합니다.

그가 선택한 장소(제단보다 물이 넉넉한 평지), 그의 세속주의적인 정신(육체를 심었으며, 육체로부터 썩는 것을 거두었다. 그가 추구한 것은 세상의 일시적인 형통), 그의 비참한 말년(세상의 모든 소유를 잃고, "굴"에 거함으로 자신이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둠)

창세기를 통해서,
이삭... 그는 조용하며 차분한 성격의 사람. 자기 아버지의 적극적이며, 행동적이며, 공격적인 기질을 이어받지 않고 조용하며, 온유하며, 다투지 않는 사람. 좋은 성품을 소유한 이삭. 그는 본질적으로 우물의 사람이었다.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맹세의 우물)로 올라갔더니"(26:23).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26:25).

자신의 "장막"을 치기 전에 먼저 "제단"을 쌓은 이삭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을 상기시키시는 약속의 하나님, 조용한 이삭을 통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신 그분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또한, 창세기 25, 27장속에서, 슬픈 장면을 통해 우리의 노년이 어떠해야 함을 일깨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은 자식을 향한 지나친 편애로 인해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길" 것이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모독한 것, 식탐의 유혹으로 인한 흐린 판단력, 영적으로 어두워진 영성.

"이삭이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창세기를 통해서,
야곱과 그가 겪은 경험들을 두 가지 관점(신자와 유대나라의 모형) 23가지(연재 107회 참조)을 통해... 하늘에 속한 것에 마음을 두도록 부름받은 우리 역시도 스스로를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기를, 늘 불신앙에 떨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경계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심도 감사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창세기를 통해서,
열 두 아들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 어떻게 주 예수 안에서 성취(연재 145회 참조) 되는지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이루어짐을 바라보게 되어 감사합니다.

창세기를 통해서,
요셉에게서 고난을 통해 영광에 이르는 진리를 발견하게 하시고 자녀들에게 연단이 따르는 것처럼, 상속자로서 우리 앞에 고통이 따른다는 사실 또한 명심하고 그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자가 됨을 알게 하심을, 그리고 요셉의 고통, 순교자의 고통, 의를 위한 고통을 통해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를 기억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완벽한 구조를 갖고 있는 창세기라는 놀라운 책을 마무리하면서 그 속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들 가운데 마지막 인물이 요셉인것은, 무엇보다도 요셉의 역사(歷史)가 창세기와 출애굽기를 연결하는 주된 연결고리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가짜가 판을 치는 이 마지막시대, 오직 예수그리스도로 옷입고 주님가신 십자가의 길을 걷는 저와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