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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57]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57] 애굽으로 내려간 요셉

En Hakkore 2024. 3. 23. 11:43

27. 요셉은 형통한 종이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 39:2).

여기에서 특별히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더라"(the Lord made all that he did to prosper in his hand)라는 표현을 주목하라(한글개역개정판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이라고 되어 있음).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여호와의 완전한 종을 가리키는 두 가지 예언적인 말씀을 일깨워 준다.♡

첫 번째 것은 우리 앞에 "복 있는 사람"을 제시하는 시편 1편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 2절).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3절). 이것은 분명히 그리고 특별하게 주 예수를 가리킨다. 오직 그 안에서만 여기의 모든 표현들이 완전하게 실현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것은 이사야 53장에서 발견된다(성육신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여기의 모든 구절들은 특별히 그를 여호와의 "종"으로서 지칭한다. 창 52:13을 보라) . 10절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기쁨이 그의 손을 형통하게 할 것이라" 라는 말씀을 읽는다.(The pleasure of the Lord shall prosper in His hand, 한글개역개정판에는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라고 되어 있음).

이것은 창세기의 모형과 얼마나 놀랍게 상응하는가! 모형인 요셉에 대하여, 창세기 39:3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행한 모든 일을 형통하게 하셨더라" 라고 기록한다. 한편 원형인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사야 53:10은 "여호와의 기쁨이 그의 손을 형통하게 할 것이라" 라고 기록한다.

28. 요셉의 주인은 요셉을 크게 기뻐했다.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창 39:4).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요셉은 보디발의 다른 종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 위에 있었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면서 그를 형통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주인을 신실하게 섬겼다. 이것은 요셉이 예표한 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주 에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다른 종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하나님을 경외함이 그 위에 있었으며(사 11:2을 보라) 그는 신실함으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는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노라" 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요 8:28).

29. 종인 요셉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창 39:5).

이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신적 성품을 나타내는 일이라든지,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라든지, 하나님의 왕권을 드러내는 일 등 자신의 모든 일을 아들에게 맡기셨다. 그러면 아들이 이 모든 일을 맡은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여기의 요셉이 예표하는 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 '그 애굽 사람의 집' 이 상징하는 것"에 복을 주시지 않으셨나? 그러면 "그 애굽 사람의 집"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이었나? 두발할 것도 없이 그것은 세상이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얼마나 큰 복을 받았는지 생각해 보라.

30. 요셉은 용모가 빼어난 사람이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창 39:6).

여기에서 성령께서 모형을 완벽하게 만들고자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이셨는지 주목해 보라. 우리는 그의 인격과 그가 맡은 위치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요셉은 노예의 비천함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는 다른 사람의 의에 예속되었다.

그는 더 이상 가나안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거주하고 있지 않았다. 그는 한 애굽인의 집에 있는 노예였다. 바로 이것이 그의 위치였다. 그러나 그의 인격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는 말씀을 듣는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아들 역시도 비천한 위치, 비하(卑下)와 수치의 위치, 순복과 종의 위치를 취하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인격의 영광이 온전히 보존되는 일에 얼마나 열심이셨는지를 생각해 보라. 그가 (비천한 자리인) 구유에 뉘였을 때, 하나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지금 태어난 아기가 바로 "주 그리스도"임을 알리셨다.

그리고 곧바로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이 어린 아기 앞에 엎드려 경배한다. 또 그가 (섬김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섬시기 위해) 공생애를 시작할 때, 하나님은 그 앞서 한 사람을 먼저 보내셔서 그가 자신은 하나님의 어린 양의 신들메조차 풀기에 합당치 못한 자임을 증언하도록 하셨다.

이것은 십자가 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가장 수치스러운 장소였다. 그러나 그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부르셔서 그가 십자가에 달린 자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임을 고백하도록 만드셨다(마 27:54). 진실로 그는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운" 자였다. 💕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3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