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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금식 2(마 6:16-18)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혀려 함이라"(17, 18절). 이 말씀은 절대적으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비교적으로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그 말씀의 배경의 빛과 문맥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그 말씀의 범죄의 빛 가운데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공기가 덥고 건조한 동양의 나라에서는 기름과 향유를 머리와 얼굴에 바르는 것이 그들의 관습이며, 거기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이"(시 104:15) 흔하고 값이 싸다(룻 3:3; 눅 7:46 등).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문자 그대로 이해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주님이 ..
금식 2(마 6:16-18) 이와 같은 일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참으로 많았다. 그들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형식만을 취하였다. 이것은 다윗이 "그들이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그들의 마음의 정함이 그의 언약에 성실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시 78:36, 37)라고 말한 것과 같다. 이와 같은 일은 자연인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미혹된 가톨릭교도들의 모든 신앙은 부분적으로는 유대적이고, 부분적으로는 이교도적인 외적이고 의식적인 행위에 참여하는 신앙인데, 그들이 그러한 의식을 준수하는 동안 그들은 그 이상의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또한 교회에 나가고 말씀을 듣고 일 년에 한두 번씩 "성찬에 참여하는" 외적인 행위에서 만족을 얻..
금식 2(마 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이와 같은 금지 명령과,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금식할 때에 '슬피 울고' '곡할 것'을 요구하신 요엘 1:13, 14은 어떠한 조화를 이루며, 또한 금식할 때에는 반드시 비통하고 특유한 몸짓이 따라야만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대답으로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에서, 금식을 하는데 있어서 바로 그 기간 동안 슬픈 기색을 하는 것을 정죄하지 아니하셨다는 사실을 말할 수 있는데, 경건한 느헤미야도 수심을 보였기 때문이다(2:2). 그 대신에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바리새인들의 사악한 허식을 비난하고 계시는데, 그들은 사실상 회개하는 마음..
금식 2(마 6:16-18)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일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금식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으라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이 말씀은 우리 주님의 말씀 중의 네 번째 부분을 끝맺는 구절인데 그(네 번째) 부분은 마태복음 6장 1절에서 18절까지이다. 그 주제는 하나님의 인정을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선한 일을 행하라는 것이다. 금식은 세 종류의 실제적인 의 가운데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그것이..
금식 1(마 6:16-18) 이제 금식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성경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언급되어 있다. 금식하는데 있어서 그 첫 번째 목적은 자신을 부인하고 우리의 육체와 육체의 정욕을 하나님의 뜻과 말씀 아래 복종케 하기 위한 것이다. 다윗은 "내가 속하고 금식하였더니 그것이 도리어 나의 욕이 되었다"(시 69:10)고 말하였다. 물론 그것은 사람 앞에서이지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우리 주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탐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리라"(눅 21:34)고 우리에게 경고하고 계신다.♡ 지나치게 먹고 마심으로써 육체는 둔해지고 육체의 감각은 무디어지며 그 마음은 나태해지고 있고, 그로 말미암아서 전인격이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의..
금식 1(마 6:16-18) 우리는 금식함으로써 의무를 다 이행한 것처럼 금식의 행위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금식은 단순히 금식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삼간다고 해서 그것이 회개의 행위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삼가는 일이 거룩의 한 과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공로적인 행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금식은 내적인 충동으로부터 나와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외부로부터 부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금식은 자발적이어야 하고, 우리가 영혼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결과이어야 하며, 그것을 조장시키는 마음의 열정으로 인하여 그 행위 자체는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된다.♡ 만일 이러한 간단한 규..
금식 1(마 6:16-18) 경건한 자의 입장에서 공적인 금식이든 사적인 금식이든 그것은 모두가 구약시대에 국한된 관례라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큰 잘못이다. 우리는 안나에 대해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겼다"(눅 2:37)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경건한 고넬료도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에 관해서 많은 빛을 얻고자 하였을 때에 금식하고 기도하였다(행 10:30). 안디옥 교회가 복음 안에서는 하나님의 종들의 성공을 위하여 하나님의 특별한 복을 구하였을 때에 그들은 "금식하였다"(행 13:3). 이와 같은 방법으로 바울과 실라가 지교회들을 세우려고 하였을 때에도 그들은 '금식기도' 하였는데(행 14:23), 이것은 그들이 그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 있어서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