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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124]

En Hakkore 2024. 7. 17. 11:24

금식 1(마 6:16-18)

우리는 금식함으로써 의무를 다 이행한 것처럼 금식의 행위에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 당연하다. 금식은 단순히 금식을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삼간다고 해서 그것이 회개의 행위가 되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 삼가는 일이 거룩의 한 과정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공로적인 행위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개인의 금식은 내적인 충동으로부터 나와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외부로부터 부과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금식은 자발적이어야 하고, 우리가 영혼의 강한 압박을 받고 있다는 결과이어야 하며, 그것을 조장시키는 마음의 열정으로 인하여 그 행위 자체는 전혀 드러나지 않게 된다.♡

만일 이러한 간단한 규칙들을 잘 알고 준수하였다면 금식에 대한 주제에 있어서 실제적으로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극단으로 나가기 쉽기 때문에 지금까지 위에서 말한 내용을 악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시점에서 경고를 할 필요가 있다.

즉 나에게 금식을 하고자 하는 내적 충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아 나는 이 의무에서 해방된 것이다 라고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동시에 그리스도인 독자는 다른 영적인 의무들과 관련시켜 볼 때에 그러한 주장을 뒷받침해 줄 만한 근거가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늘의 만나를 먹고 싶은 욕망과 은혜의 보좌로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소망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회개하여 우리의 마음이 냉담함을 하나님께 고백하고 정해진 수단을 건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롭게 감동시켜 주시기를 그에게 간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같은 원리가 금식에도 아주 분명하게 적용된다고 본다.

금식을 하기 위한 특별한 시기는 주로 하나님의 통치하시는 행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만 하며, 그러므로 그러한 시기를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의 사역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지 못하고 기쁨과 향략에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통곡하며 굵은 베를 입지 않으면 안되게끔 하실 것이다(사 22:12, 13).

개인적인 금식이나 공적인 금식을 하는 데에 소비되는 시간에 대해서는 그 의무에 따라 곧 상황의 급박한 상태에 따라 시간을 규정하는 것이지 시간이 그 의무를 규정하지는 않는다.♡

시간의 다양한 길이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도 언급되어 있다(삼하 12:16; 에 4:16; 단 10:2, 3을 보라).

"그러므로 나는 이 일에 얼마만큼의 시간을 소비하였는가에 대해서 아무도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즉 시간의 양을 정하는데 대해서 스스로 묶인 채 올무에 걸려 있지나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다"(토머스 보스턴).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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