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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팔복1(마 5:3~12)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이 은혜로운 약속은, 첫째로, 하나님의 위로로 말미암아 즉각적으로 뒤따라오는 참된 회심에 의해(즉, 회심보다는 뉘우침과 회개가 먼저이다) 성취된다. 다시 말하면, 양심이 견디어 낼 수 없는 죄책에 대하여 깨닫게 되는 죄의 부담을 벗어 버리는 것이다. 그 약속은 구세주의 도움이 절박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성령께서 적용시켜 둠으로써 성취된다.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는 능력의 말씀을 하신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분명히 죄는 짐이라는 생각, 곧 그리스도께 구원해 달라고 간청해야만 할 짐이라는 생각을 전제로 하였음을 주목하라. ..
팔복1(마 5:3~12) '애통'은 죄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부드러운 양심과 상처받은 마음으로부터 샘솟아난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반역하고 원수가 되었던 것에 대하여 경건하게 슬퍼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것은 마음으로 믿고 의지해 왔던 도덕성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며, 자기 과신의 원인이 되는 독선적인 태도에 대한 슬픔이기도 하다. 이러한 '애통'은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나의 죄 때문이라는 사실을 고통스럽게 깨닫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볼 때 "그들이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슥 12:10). 그것은 '길르앗의 유향', 곧 복음의 위로를 진실하게 마음으로 환영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러한 눈물과 탄식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우리의 영적..
팔복1(마 5:3~1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이요"(4절). 애통이란 빈궁한 인간의 본성이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이다. 고통과 슬픔으로 인하여 우리의 영혼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드는 것이다. 우리가 쾌적하고 즐거운 사회를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기 본문의 말씀은 중생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이상한 말로 들리겠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귀에는 달콤한 음악으로 들린다. "만일 그들이 '복 있는 자'라면 어찌하여 '애통해' 하는가?" 그들이 애통해 한다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겠는가? 오직 하나님의 자녀만이 이 역설을 설명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슬퍼하는 자가 행복한가"라는 말은 세상의 논리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어느 곳 어느 세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부유한 자와 ..
팔복(마 5:3~12)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참된 심령의 가난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흔히 '더 고상한 삶'을 촉진시키기 위한 모임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된다. 그러나 누가 더 겸손한 삶을 위한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은 많이 있지만, 영적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방법, 즉 자신감. 자만. 자기의를 비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본적이 있는가?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눅 16:15)이 사실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일들은 사람들로부터, 곧 지금 기독교계에서 거의 모든 고위층에 있는 현대적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로부터는 멸시..
팔복1(마 5:3~12) 서론의 끝부분에서,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첫째로, 고통받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특별한 관계가 있으며, 둘째로, 그의 사도나 사역자로 인정받는 그의 열두 제자와 특별한 관계가 있으며, 셋째로, 일반 백성들과 관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주님의 산상설교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이 분명하게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영감을 받지 않은) 그 어떤 사람과는 다르게 말씀하심으로써, 그의 선지자적 직무를 완성하고 계심을 알게 된다. 이 설교를 주의 깊게 연구해 보면, 길이에 있어서는 상당히 다르지만 12개(하나님의 통치의 수)의 구분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 주님은 중생하지 않은 자들에게 감추어진 비밀을 우리에게 분명히 밝히심으로써, 참된 행복 또는 축복..
이제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상이 된 사람들에 대하여 주목해 보자. 이 산상설교가 실제로 누구에게 적용되는가. 구원받은 자들인가, 구원받지 않은 자들인가에 대해 지금까지 많은 의견 차이가 있어 왔다. 상당수의 불필요한 독단론과 더불어 양 극단의 입장을 취하는 자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산상설교를 그리스도의 모든 말씀 사역의 대용이며 예언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모든 가르침의 전반적인 대의를 요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성장하면 할수록 성경 전체에 엄하고 견고한 한계를 두지 못하는데, 즉 성경의 어떤 부분들은 이러한 부류에만 속한다고 주장하면서 그 말씀이 적용되는 것을 제한하지 않는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올바르게 분류한다"는 구실로 유대인에게만, 이방인에게만, 하나..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령은 훌륭한 선지자의 이야기하는 방법을 주목하고 계신다. 첫째로, 그의 모든 종들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해야 하며 조심스럽게 본받아야 한다. 공개적으로 이야기 하는 모든 사람들의 첫 번째 필수적인 요소는 입을 크게 벌리고 똑똑하게 발음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이야기의 내용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의 청중들에게는 거의 효과가 없을 것이다. 슬프게도 참으로 많은 설교자들이 말을 속삭이듯 하거나 큰 소리로 말하거나, 또는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알아들을 수 없는 경건한 듯한 슬픈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젊은 설교자들은 자유스럽고 명확하며 효과 있는 이야기 투를 습득하는데 있어서, 한편으로는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을 피하고 그 반면에는 목소리를 지나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