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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시리즈/산상수훈 강해 (Sermon on the Mount)

[산상수훈 6]

En Hakkore 2024. 7. 9. 10:50

팔복(마 5:3~12)

오늘날 믿는다고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 가운데에서도 이와 같은 참된 심령의 가난은 찾아볼 수가 없다.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흔히 '더 고상한 삶'을 촉진시키기 위한 모임에 대한 광고를 보게 된다.

그러나 누가 더 겸손한 삶을 위한 모임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성령으로 충만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은 많이 있지만, 영적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방법, 즉 자신감. 자만. 자기의를 비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책을 본적이 있는가?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눅 16:15)이 사실이라면, 하나님 보시기에 귀중한 일들은 사람들로부터, 곧 지금 기독교계에서 거의 모든 고위층에 있는 현대적 바리새인들과 같은 사람들로부터는 멸시를 받는다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오늘날 소위 '성직자'라고 하는 자들의 대부분이 자기를 낮추기보다는 오히려 교만하다. 그리고 그들은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나 강단에서 회피하고, 청중들도 그런 설교를 싫어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러면 심령의 가난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 사람들이 몹시 감탄하고 극구 칭찬하는 오만함과 자신감과 자부심과 강한 성격과는 반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경배하기를 거절하며, 모든 일을 태연히 밀고 나가려고 하며,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의 말을 듣겠느냐?" 라고 바로 말처럼 말하는 독단적이고 도전적인 태도와는 반대이다.

'심령이 가난하게' 된다는 것은, 나는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며,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으며, 나는 모든 것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심령의 가난은 내부에 있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공허함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모든 의로움은 누더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 괴로움에서부터 사작된다.

내가 최선을 다해 행한 일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즉,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굳히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심령의 가난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흙으로 된 존재라는 것과, 그의 전적인 무용성과 지옥에 가야 마땅한 자라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저절로 나타난다.

그는 궁핍하게 되기 시작했을 때, 먼 나라에서 탕자가 되었음을 처음으로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큰 구원은 '돈 없이 값없이' 무료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판매하셨다면, 어떠한 죄인도 그것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그것을 구입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아시고서 대단히 자비롭게도 은혜로 이것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렇다, 성령께서 죄로 어두워진 우리의 눈을 밝게 해주실 때까지는 우리들 중 아무도 이것을 알지 못한다.

오직 죽음을 통과하여 생명을 얻고 자기들이 거지와 같이 가난하다는 것을 깨달은 자만이 하나님의 자비를 기쁘게 받아들이고 참된 부를 추구하기 시작한다.♡

이리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마 11:5). 그들의 귓가에 뿐만 아니라 그들의 마음속 깊이 전파된다!

심령의 가난은 신앙의 부정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과 그의 살을 먹는 것과 그의 잔을 마시는 것보다 먼저 자신의 전적인 무용성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을 채울 수 있도록 성령께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는 것이다. 즉 곤궁함과 궁핍함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첫 번째 복은 중생한 모든 영혼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근본적인 특징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자기는 하나님 앞에서 한 줌의 흙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가 가르침이나 세속적인 일로 말미암아 이 위치를 벗어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되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신실하심과 사랑으로 그 일을 행하신다. 왜냐하면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를 위한 복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정신을 함양하는 방법은 마태복음 11:29에 잘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심령의 가난을 소유한 자를 '복 있는 자'라고 선언하셨다. 그가 지금은,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가 현세에는 은혜의 왕국이며 내세에는 영광의 왕국인 '천국'의 상속자이기 때문에, 그는 복 있는 자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약속하신 보배로운 약속이 많이 있다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시 40:17),

"여호와는 궁핍한 자의 소리를 들으시며"(시 69:33),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며"(시 72:13),

"궁핍한 자는 그의 고통으로부터 건져 주시고"(시 107:41),

"내가....떡으로 그 빈민을 만족하게 하리로다"(시 132:15),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이 심령의 가난을 더욱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도록 이와 같은 은혜의 말씀으로 우리를 북돋아 주소서.♡

Arthur W. Pink 산상수훈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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