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09 (15)
En Hakkore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9)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두 가지 뚜렷하고 서로 다른 본질들, 즉 '육체'와 '영'이 있다고 가끔 말해진다.(갈 5:17).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본질들'을 두 개의 행동 원리들 이상의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로마서 7:23에서는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이 두 가지 '본질들' 혹은 '원리들'에 대하여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우는 것을 본다"고 말하고 있다. 믿는 자 안에 있는 육과 영은 우리의 구원자, 즉 하나님이며 인간이신 자의 거룩한 인격 속에 있는 '두 가지 본질들'과는 매우 다른 어떤 것으로서 생각해야 한다. 신성과 인성은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실재하는 실체들이었다. 더우기 성..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8) 중생의 적극적인 면은, 하나님의 은혜는 한 영혼의 모든 기능들을 혁신시키는 영적인 생명의 원리를 불어넣음으로써 그 영혼의 상태에 완전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대상자를 그의 본질에서가 아니라 그의 생각과 바램과 열망과 습관이라는 면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중생 또는 신생은 그들의 본래의 기능이 전에 사용되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작용하게 되는 영향 아래서 혼이나 영 안에 강력하고 혁신적인 원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생각은 '새롭고' 그의 선택의 대상도 '새로우며' 그의 목적과 ..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7) 중생한 사람의 인격은, 본질적으로는 중생하지 않은 사람의 인격과 꼭 같다. 즉 각각은 영과 혼과 몸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속에는 또한 그의 3중적인 존재의 모든 부분을 부패시켰던 악의 원리, 즉 그 '원리'가 그의 '죄로 물든 본성'(불결해지는 것이 돼지의 '본성'이듯이 이 말은 그 인간의 악한 기질과 성격을 표현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운다)이 되는 것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이 다시 태어날 때는 이것과 다르다. 새로운 '원리'가 즉 새로운 '본질'이나 성향, 즉 그로 하나님을 향하게 추진시키는 성향이 그 사람의 존재 안에 들어온다. 그러므로 이 두 경우에 있어서 '본질' 이라는 것은 어떤 실체라기보다는 성질인 것이다. "..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6) 타락할 때 인간은 원래 창조주가 그에게 부여해준 능력들 중 하나도 상실하지 아니하였다. 다만 그 능력들을 하나님을 향하여 사용하려는 힘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모든 바램과 그의 창조주를 향한 모든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모든 참된 지식이 상실된 것이다. 죄가 그를 사로잡았다. 악의 원리로서의 죄, 작용의 힘으로서의 죄, 그리고 더럽히는 영향으로서의 죄가 그의 영과 혼과 몸을 완전히 장악하여서 그는 '죄의' 종 혹은 노예가 되고 말았다(요 8:34). 그 자체로서 인간은 마치, 서리를 태울 수 없고 불이 얼어붙을 수 없듯이, 더 이상 선하고 영적이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만한 것은 그 어느 것도 행할 수가 없었다. "육신에 있는(그들의..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5) 주 예수께서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요 3:6)라고 말씀하셨을 때, 주님은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부패하고 타락한 본성을 유전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부적당할 뿐만 아니라 이 부패한 본성은 부패 그 이상의 어느 것도 결코 될 수 없으므로 어떤 문화도 그 타락한 본성을 하나님의 나라에 적합하도록 개조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암시하고 계신다. 그 타락한 본성과 그의 표현은 교육과 환경에 의하여 제한되고 수정되어질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그의 죄에 물든 성향과 감정은 여전히 남아있다. 썩은 나무는 아무리 가지를 쳐주고 다듬어준다고 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좋은 나무를 갖든지 아니면 다른 나무에 접붙여 주어..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4) 그리스도를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에게 여기 이 지상에서 자신의 삶의 최고의 자리를 내어주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거처를 준비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럴리가 없다. 오히려 주님은 그들이 재앙을 만났을 때에 웃으실 것이며 그들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비웃으실 것이다(잠 1:26).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서 찬미의 가락을 울리기에 합당하도록 이 지상에서도 찬미로 가득차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함과 행복을 (마치 죄와 비참함을 그렇게 하셨듯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하셨기 때문에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중생하지 않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곳이 양심의 채찍질과 하나님의 거룩함의 ..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3)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다(고후 3:17). 즉 그 다음 구절이 분명히 보여주듯이 내재하는 죄의 권세로부터의 자유함이 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이요"(마 5:8).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그와 아주 친밀한 교제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과 같이 우리의 허물을 없애는 것이다(사 44:22). 왜냐하면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과 떨어지게 되었기 때문이다(사 58:2).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요한복음 3:36절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기뻐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기쁨을 누릴 수 있으려면 "청결한 마음"이 없어서는 안된다. 이제 마음은 하나님과..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2) 복음적 의무는 중생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첫째 내용은 자아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기"(딤후 3:2) 때문에 타락한 인간 본성으로 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영이 새로와지기 전까지는 자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언약은 "내가 그들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겔 11:19). 모든 복음적 의무는 마음의 유연성과 부드러움을 요구한다. 교만은 마귀를 정죄하는 정죄(딤전 3:6)이며 우리의 첫조상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창 3:5) 부분 욕망때문에 타락하였다. 그때 이후로 인간은 더욱 더 높아지고 싶어하고 너무나 고집이 세고 복음적 의무를 수행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