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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구원 6] 중생의 필요성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구원 (Doctrine of Salvation)

[영적인 구원 6] 중생의 필요성

En Hakkore 2024. 4. 9. 11:29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2)

복음적 의무는 중생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시는 첫째 내용은 자아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기"(딤후 3:2) 때문에 타락한 인간 본성으로 사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영이 새로와지기 전까지는 자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언약은 "내가 그들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겔 11:19). 모든 복음적 의무는 마음의 유연성과 부드러움을 요구한다. 교만은 마귀를 정죄하는 정죄(딤전 3:6)이며 우리의 첫조상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창 3:5) 부분 욕망때문에 타락하였다.

그때 이후로 인간은 더욱 더 높아지고 싶어하고 너무나 고집이 세고 복음적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 복음이 주요 목표로 삼는 것은 우리 자신을 영광되이 하는 것을 다 물리치고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하게 하는 것이다(고전 1:29-31). 그러나 이것은 은총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새롭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녹아지고 하나님의 요구대로 다시 만들어질 때에야 가능한 것이다.

새로운 본성이 없이 우리는 복음이 요구하는 의무를 계속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한다"(롬 8:5). 그런 마음은 영적인 일에 오랫동안 종사할 수 없다. 양심의 가책, 지옥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일시적으로는 영향을 끼칠 수 있으나 그것들이 지속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돌밭도 싹을 낼 수는 있으나 뿌리가 없으므로 곧 말라 버린다(마 13장). 돌을 하늘 높이 던질수도 있으나 결국 그것은 땅에 떨어진다. 자연인은 한동안 종교적인 열정에서 높게까지 올라갈지도 모르지만 이스라엘에 대해 "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이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시 78:37)라고 말한 바와 같이, 그에 대해서도 조만간 그런 평가가 있게 될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령으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육으로 끝나고 만다.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곳에만 그 일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전 3:14; 빌 1:6).

중생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것과 같이 하늘의 영광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생해야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그들의 힘과 신선함은 바로 그 중생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노쇠하였거나 연약한 사람은 그 약속된 땅에 한 사람도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즉 애굽의 본성을 가지고 애굽에서 나온 사람들과 애굽에서 종살이 하면서 고통을 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양파와 마늘을 그리워하는 자들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어 버리고 말았다. 오직 어려운 난관에 부딪쳤을 때 그들을 격려하던 두 첩자만이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옛사람만을 보유하고 있고 종의 집에서 태어난 사람은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지만 오직 새로 태어난 피조물만은 하늘의 가나안에 들어갈 것이다. 하늘은 불결한 자가 아니라 거룩하게 된 자가 받을 기업이다."

"그들이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되리라"(행 26:18).

아담이 낙원에서 추방되자마자 불타는 화영검이 그로 다시 그 행복한 곳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워졌었다. 버려진 상태에서는 아담이 그것을 소유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도 역시 우리가 아담에게서 받은 것으로 인해 우리 근본보다 훌륭한 특권을 바랄 수 없다. 율법 아래 있었던 제사장은 자신을 성결케 하지 않고는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고 사람들 또한 성결케 되어지지 않고는 예배하는 무리 속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또한 예수님의 피로 뿌려지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지성소에 접근할 수가 없다(히 10:22, S. Charnock). 천국은 준비된 자에게 예비된 장소이다. 그리스도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룰 예비하러 간다"고 말씀하셨다(요 14:2). 누구를 위해서인가? 주를 좇기 위해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버린" 사람들을 위해서(마 19:27)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고전 2:9)를 위해서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사랑한다. 그들은 영적인 일의 무한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리고 영적인 일들을 진실로 사랑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크게 여기지 않는다(빌 3:8). 그러나 영적인 일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인간 스스로가 영적으로 되어져야 한다.

자연인은 그것에 대해 듣고 또 그 교리에 관한 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는 영적으로 진리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살후 2:10).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기쁨과 즐거움을 찾지 못한다. 그러나 새로와진 영혼은 어떤 구속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 그 자신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사모한다.♡

그는 "하늘에서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가 없나이다"(시 73:25)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은 그의 가장 큰 행복이 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그 자신의 유일한 규칙이 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그의 주요 목적이 된다. 그런 사람에게 있어서는 영혼의 기질 그 자체가 변한 것이다.

인간은 하늘 나라를 준비하기 전에, 먼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중생한 자들에 대해서는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골 1:12)고 쓰여 있다. 어느 누구도 거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합당하지" 않다.

그리스도 자신도 그가 죽음에서 부활한 후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영광을 얻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고 또한 우리도 죄에서 부활되지 않고서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에게 동일한 일(하늘 나라의 옷으로 입히시는 일)을 이루신(마무리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다는 증거이다(고후 5:5).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