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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구원 8] 중생의 필요성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구원 (Doctrine of Salvation)

[영적인 구원 8] 중생의 필요성

En Hakkore 2024. 4. 9. 11:30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4)

그리스도를 마음 속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그에게 여기 이 지상에서 자신의 삶의 최고의 자리를 내어주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거처를 준비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그럴리가 없다. 오히려 주님은 그들이 재앙을 만났을 때에 웃으실 것이며 그들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비웃으실 것이다(잠 1:26).

우리의 마음은 하늘에서 찬미의 가락을 울리기에 합당하도록 이 지상에서도 찬미로 가득차야 한다. 하나님은 거룩함과 행복을 (마치 죄와 비참함을 그렇게 하셨듯이) 아주 밀접하게 연결하셨기 때문에 그것들은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중생하지 않은 영혼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손 치더라도, 그곳이 양심의 채찍질과 하나님의 거룩함의 고통스러운 불로부터 피할 수 없는 은신처는 되지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하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공로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은(행 26:18)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죄의 용서함을 받을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미 7:19) 하나님이 그들의 허물을 없이 하신다. 죄를 용서하고 마음을 청결히 하는 것은 구세주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피와 물처럼(요 19:34)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하늘에 합당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는 것이 그 곳을 위한 한 자격이 되듯이, 심령으로 새롭게 되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엡 4:23,24)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

"죄인은 용서함을 받음으로 왕의 존전에 서서 그의 식탁에서 시중 들 수 있는 자격은 얻을 수 있으나 그의 악취나고 해충이 득실거리는 옷을 벗어버릴 때까지 그에 합당한 존재는 되지 못한다"(S. Charnock).

자신만을 즐겁게 하기 위해 살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죄는 하나님이 용서하셨다고 상상하는 것은 치명적인 미혹이며 위험한 가정인 것이다. 우리가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을 증거해 주는 것은 바로 "중생의 씻음"(딛 3:5-7)이다.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 구원받는 자 안에 내주(內住)하신다(갈 2:20).

그러나 그가 영적으로 냉담하고 완고하고 생명이 없는 채로 남아있는 마음 속에 거하시는 일은 불가능하다. 거룩함의 최고의 모범되신 이가 방종한 자의 후원자가 되실 수는 없는 것이다.

칭의와 성화는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어떤 사람이 죄책으로부터 용서함을 받을 때 그는 또한 죄의 지배로부터도 구원된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영혼이 중생하기 전까지는 이루어질 수 없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가 반드시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되어야 했던 것처럼(롬 8:3) 또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기 전에(고전 5:21)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후 5:17).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는 것은(벧후 1:4)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할 수 있기 전에 범사에 인간들과 같이 되심처럼 실제적이고 크게 필요한 일이다(히 2:14-17).

"하나님이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고는, 그는 죄의 나라로 들어올 수 없다. 인간이 거듭나지 않고는 의의 나라를 볼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 즉 모든 의지의 신성의 전권대사이며 집행자인 성령의 능력이 하나님의 성육신과 인간의 중생을 이루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 죄가 될 수도 있으며 사람들의 아들들이 의롭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H. Martin)

자신의 모든 시간을 죄 속에서, 즉 자신만을 즐겁게 하며 소비해 버린 사람이 어떻게 그 지극히 거룩한 세계로 들어갈 수 있겠는가? 자신의 마음을 한 번도 그 가락에 맞추지 않았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겠는가? 믿음의 눈을 통하여 "희미하게 거울을 통하여" 보듯이 밖에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는 자가 어떻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의 장엄한 위엄을 볼 수 있겠는가?

오랫동안 깜깜한 어둠만을 보아왔던 눈이 갑자기 한낮의 밝은 빛을 보는 것이 참아내기 어려운 고통이 되듯이, 중생하지 못한 자가 빛이신 자를 바라볼 때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한 광경을 환영하는 대신에,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할 것이다"(계 1:17).

실로 그들의 고통이 너무도 심하기 때문에, 그들은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낮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고 할 것이다(계 6:17). 하나님이 당신을 중생시키지 않으신다면, 바로 당신이 이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