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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구원 12] 중생의 성격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구원 (Doctrine of Salvation)

[영적인 구원 12] 중생의 성격

En Hakkore 2024. 4. 9. 11:32

3. 인간이 하나님께 부적합하기 때문에 중생이 필요하다(8)

중생의 적극적인 면은, 하나님의 은혜는 한 영혼의 모든 기능들을 혁신시키는 영적인 생명의 원리를 불어넣음으로써 그 영혼의 상태에 완전한 변화를 가져오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대상자를 그의 본질에서가 아니라 그의 생각과 바램과 열망과 습관이라는 면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중생 또는 신생은 그들의 본래의 기능이 전에 사용되던 방식과는 다른 방법으로 작용하게 되는 영향 아래서 혼이나 영 안에 강력하고 혁신적인 원리를 하나님으로부터 전해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생각은 '새롭고' 그의 선택의 대상도 '새로우며' 그의 목적과 동기도 '새롭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의 외적인 모든 행동이 변화되는 것이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고전 15:10). 이 말씀은 주관적인 은혜를 언급하고 있다. 또한 택한 자들에 대한 하나님 고유의 사랑과 은혜와 친절은 객관적인 은혜이다. 또한 택한 자들에게 한정된 주관적인 은혜도 있는데 그것에 의하여 그들 안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것은 영적 생명의 원리가 주입됨으로써 생기며 이로 인하여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이 '원리'는 '새 마음' 그리고 '새 영'이라고 불리운다(겔 36:26). 그것은 거룩하고 영적인 작용의 원리로서 영원의 모든 기능과 능력 속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성향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초자연적인 것이 영적인 것으로 변형되고 육으로 태어난 것이 '육' 이기를 그치고 성령으로 태어난 것처럼, 타락한 본성 그 자체 안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 용어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그러나 이 표현이 하나님께서 중생시킨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역의 실체를 인정함을 의미한다면 그 용어는 받아들일 만하다.

신생이란 비유를 통해 중생을 다루면서, 어떤 저술가들은 성경에서 말하지 아니하고 있으며 사실상 허락하지도 않는 자연적 출생을 비유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육체적인 탄생은 수태(受胎) 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피조물, 즉 하나의 완전한 인격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중생한 자는 그가 거듭나기 전에 이미 완전한 인격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영적인 인격체가 아니라고 반박할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과 물질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며 우리가 만일 영적인 것을 어떤 구체적인 존재로서 말하거나 생각하면 우리는 혼동에만 빠질 뿐이다.

중생은 지금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어떠한 인격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나누기에는 부적합하였던 인격이 새로와지고 회복되는 것이며 이것은 어떤 본성, 혹은 원리, 혹은 생명이 전달됨으로 그의 옛날의 기능에 대하여 새롭고 다른 성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을 두 개의 명백한 인격체로 이루어진 조합물로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견해이다.

'칭의'가 하나님께 대한 그리스도인의 객관적인 관계의 변화를 묘사하는 것처럼 '중생'은 그의 영혼의 기질과 성향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하여 이루어진 내부적이고 주관적인 변화를 나타낸다. 자신의 백성들 안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탄생'에 비유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것이 새로운 세계, 즉 전적으로 새로운 경험의 시작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적인 탄생으로 어둠과 제한된 곳(모태)으로부터 나와 빛과 자유의 상태로 옮겨지는 것과 같이 성령이 우리를 살리실 때의 영혼의 경험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혁명적인 경험이 또한 부활(요일 3:14)로도 비유된다는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신생'과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로써 의미되는 한 편으로 치우친 개념에만 치우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부활은 새로운 몸이 완전히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옛 몸이 회복되고 영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생은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남"(벧전 1:3)이라고도 불리우는데 그것은 낳게 하는 사람의 형상이나 모양이 그 영혼에 전해지고 찍혀지기 때문이다. 첫번째 아담이 자신의 형상과 모양에 따라 아들을 낳았던 것처럼(창 5:3) 마지막 아담도 자신의 아들들에게 전해 줄(엡 4:24; 골 3:10)"형상"(롬 8:29)을 지니고 있다.

Arthur W. Pink 영적인 구원 p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