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Arthur. W. Pink (2098)
En Hakkore
2. 신적 확신 여호수아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 내용은 "자녀의 떡"의 본질적인 부분이요, 그들의 복된 삶에 필수적이다. 이는 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우리에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가 있다.🌱 교리적으로는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최고의 신학자들이 깊이 다루어 온 주제, 즉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에 대해 선명한 빛을 비추어 준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한 이 부분의 말씀을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근거로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여호수아와 모세와의 관계를 확실히 알게 되면, 복음이 율법과 갖는 관계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상호 관계가 율법과 복음 사이의 주요 차별점 중의 한 가지를 개략적으로 시사해 준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식해 왔다...
앞의 글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이 책의 내용들은 두 가지로 - 출발과 전진으로, 또한 죄인에게와 성도에게 - 적용할 수 있다. 이 점은 성경 정경 속에서 여호수아서가 차지하는 위치에서도 암시된다고 믿는다. 여호수아서는 이중적인 관계를 갖고 있다. 즉, 모세오경 다음에 위치하면서도, 그것과 연결되어 있고, 동시에 역사서의 시작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수아서의 내용이 지니는 이중적인 영적 의의를 강하게 암시해 준다. 가나안 땅에 대해서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이렇게 말씀한 바 있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신 12:9). 광야에서 방황하던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가나안은 그들의 "안식"이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경험에 있어서는 그 땅에 들어간다는 ..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히 11:8). 그 땅이 자기에게 주어지리라는 것은 더 더욱 알지 못하고 나아간 것이다. 구원 얻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요 동시에 하나님의 약속들을 의지한다.😊 사랑하는이여! 이 점에 대해 실수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히 5:9). 아브라함은 말로만 아니라 행동으로 순종했다. "나아갈 새" 이런 점에서 그는 "아버지 가겠나이다"라고 거짓말하고는 가지 않는 사람(마 21:29)과 뚜렷한 대조를 보여 준다. 태양과 그 빛을 불과 열기를, 서로 분리시킬 수 없듯이, 믿음과 순종 역시 서로 분리되지 않는 것이다...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수 1:2). 여러 세기 전에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하셨던 그 약속들을 여호와께서 이루실 그 정해진 때가 이제 이르렀다. 모세를 통해 이루어진 모든 일은 그 일을 예비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일들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철저히 준수하는 한 여호와께서 계속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시리라는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이 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앞서 맺은 그 언약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시는 모든 일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언약을 지키면 그들이 번성했고, 그 언약을 어기면 여호와의 심판을 경험했던 것이다. 여호수아..
1. 믿음에의 부름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수종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수 1:1). 이 절의 첫 단어를 올바로 번역하면, 성경의 축자 영감을 시사해 주는 한 가지 실마리를 보여 준다. 그것을 제대로 번역하면 "그리고" 라 한다(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음. 역주). 영감을 받지 않은 저자라면 과연 자신의 책의 첫머리에 그런 접속사를 붙이는 것을 생각할 수나 있었을까? 존 우카르트(John Urquhart)는 자신의 '성경, 그 구조와 목적'(The Bible Its Structure and Purpose) 제 1권에서 바로 이 특징을 지적한다. 구약의 많은 책이 "베"(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시작한다는 점이 아주 미세하면서도 상당히 중요한 사실이라는 것..
하나님은 그분이 기뻐하시는 대로 인간사에 개입하실 절대적인 권한을 지니신 분이신 것이다. 더욱이 하나님은 이 일로 그의 의를(그의 주권은 물론) 시행하신 것이다.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의 죄악으로 몰수했던 그 땅을 그들로부터 취하신 것이요, 또한 그의 은혜로 이스라엘에게 주셨으며, 그들 자신이 불성실하고 불순종하는 청지기들로 드러날 경우 그들 역시 그 땅을 빼앗기게 되리라는 명확한 깨달음이 그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어째서 가나안 사람들을 완전히 멸망시키라는 지시를 내리셨을까? 그들의 끔찍한 부패와 총체적인 우상 숭배 때문이었다. 레위기 18:3, 27, 28을 펴서 3절과 27절 사이에서 그 "가증한 일"에 대해 묘사하는 내용을 보고, 또한 하나님은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가득 차기"까지 그들..
그 다음에는 요단 강을 건너는 사건이 이어진다. 강의 수위가 이례적으로 높았으나, 초자연적으로 강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물어보자. 그 굉장한 사건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은 하찮은 이적을 행사하지 않으신다. 합당한 이유가 없이는, 또한 무언가 중요한 목적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자연 질서를 유보시키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이루어져야만 했던 그 필연성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당시 요단 강은 걸어서 건너기에는 특히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에게는 수위가 너무 높았다. 하지만 배를 만들거나 강 양쪽을 잇는 다리를 만들었어도 충분히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요단강은 물살이 세지도 않고 강폭이 과히 넓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리를 만들 ..
12장까지는 가나안 정복을 다룬다. 하지만 모든 전투에서 수행할 행진과 싸움을 일일이 다 상세히 다루지는 않는다. 그 대신 두드러지는 구체적 사실들-곧, 사건들의 진전의 계기가 되는 일들과 하나님의 이적적인 도우심을 가장 선명하게 제시해 주는 사건들, 그리고 이스라엘의 순종과 하나님의 이적적인 도우심 사이의 필연적이며 불가분리의 연관성을 입증해 주는 일들-만을 서술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종 전투나 성(城) 들의 함락, 심지어 특이 사항이 없는 긴 원정(遠征)들 따위와 같은 가나안 정복에 속한 갖가지 다른 일은 그저 짧게 요약하는 식으로만 언급하여, 그 작전 전체의 대략적인 상황과 그 궁극적인 성공을 조감하도록 해 준다. 모든 요인을 고려해 보면 가나안 정복에 소요된 기간은 생각보다 상당히 짧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