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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12] 서론1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2] 서론1

En Hakkore 2024. 2. 10. 11:52

그 다음에는 요단 강을 건너는 사건이 이어진다. 강의 수위가 이례적으로 높았으나, 초자연적으로 강이 갈라지고, 하나님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갔다. 여기서 잠깐 멈추고 물어보자. 그 굉장한 사건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하나님은 하찮은 이적을 행사하지 않으신다. 합당한 이유가 없이는, 또한 무언가 중요한 목적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자연 질서를 유보시키는 법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일이 이루어져야만 했던 그 필연성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당시 요단 강은 걸어서 건너기에는 특히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에게는 수위가 너무 높았다. 하지만 배를 만들거나 강 양쪽을 잇는 다리를 만들었어도 충분히 건널 수 있었을 것이다. 요단강은 물살이 세지도 않고 강폭이 과히 넓지도 않았다. 그러니 다리를 만들 경우 시간이 지체될 수는 있었겠지만 그다지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이적을 행하신 이유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다른 모든 이적의 경우와 동일하다. 곧 물리적인 필연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드러내는 데 있다.😊

하나님이 태초에 세워놓으신 자연의 법칙들만으로도 모든 물리적인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충족했다. 그 법칙들이 방해를 받는 일은 오로지 우리의 도덕적이며 영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다. 이적이 전혀 없이도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그랬다면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나, 그의 인자하심이나, 그들과 함께하심 등이 그들에게 영광스럽게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애굽과 홍해와 광야 그리고 이제 가나안 땅에서 행하신 그 엄청난 이적들은 이방 신들은 참 신이 아니요 선도 악도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언약 백성들에게(또한, 주변의 민족들에게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오직 여호와 그 분만이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이요 "온 땅의 주"(수 3:11,13)이심을 말이다.🫰

그 이적들이 베풀어진 것은 그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관계하고 완전히 의지해야만 했던 그 하나님의 무한한 완전하심을 더욱 확실히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이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상황 속에 처하게 된 것은 결국, 그들을 구원하신 분이 과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이 구원받는 것이 그들 자신의 용맹함과 힘 때문이 아니요 여호와의 오른손과 강한 팔이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준 것임을 다양한 방식으로 깨닫게 된 것이다. 가나안이 그들의 것이 된 것은 그들 자신의 용맹스럽게 정복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땅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었다.

여호와께서 요단 강에서 그렇게 굉장한 방식으로 그들을 위해 개입하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마치 여호와께서 친히 그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신 것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기억에 길이 남을 그 일을 통해 그들이 가나안 전체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그들에게 보증해 주신 것이다.🧡

동시에 이 일과 관련해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지도자라는 새로운 자격으로 공적인 직무를 행하였고, 이로써 그의 직분의 신적인 권위와 그 증거가 그들의 눈앞에 제시되었으니, 이는 과거 그에게 주신 말씀("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수 1:5))- 이는 그를 홍해 앞에 선 그의 전임자에 비하는 것이었다-을 놀랍게 확증해 주는 것이다.

그 백성이 할례를 받은 일과 유월절을 지킨 일이 그 다음에 이어진다(5장). 하필 여호수아서의 이 부분에서 이 사건들이 일어나는 사실의 당위성과 의의를 인지하는 데는 하등의 어려움이 없다. 그 사건들은 가나안 정복에 속한 것이요, 그 정복 자체가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이스라엘이 세밀하게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후에 여리고 함락 기사가 이어진다. 여리고 함락에서도 요단 강을 건널 때와 동일하게 두 가지 특징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니, 곧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의심 없는 철저한 순종이 그들에게 요구되었다는 것과, 또한 그 때의 승리는 그들의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것이었다는 것이다.🫰

아이성 정복 사건에서도 동일한 교훈이 제시된다. 물론 그 때에는 반대로 그들이 하나님의 지시들에 불순종한 결과로 참담한 패배를 당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계속 이어지는 강해에서 다루게 될 것이므로, 더 이상 미리 예상하지는 않겠다.

이 시점에서 하나님의 원수들이 이 책에 대해서 제기하는 공격들에 대한 답변으로 애기하면, 여호수아서 내용의 윤리적 성격이 불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에게서 사악하게 비판을 받아 왔다.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켜 가나안 민족들을 살육하고 평화로운 한 백성의 땅을 도둑질하는 사나운 유목민의 무리라고 매도해 온 것이다. 이 비평가들은 하나님을 그런 불의와 만행을 인정하는 분으로 묘사하는 것은 신적인 성품에 전혀 합당치 않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답하면서 지적해야 할 사실은 가나안은 오래 전에 이미 하나님의 지정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소유가 되었고(창 15장)-아브라함의 직계 후손들에게 거듭 주어졌으며-그 약속이 지금 성취되어 그들이 그 땅을 받게 되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명령을 하달받아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소유한 것이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