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Arthur. W. Pink (2098)
En Hakkore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니라"(롬 6:11). 이것은 믿음으로 "여기는 것"이다. 느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우리의 의식적인 "경험"과는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오류 없는 말씀 위에 든든히 서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심판을 기준으로 볼 때에, 영혼을 진정 그리스도께 맡기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 것"이요, 믿음은 하나님의 전충적적인 권위에 대한 그 복된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신자는 다시 사시고 승리를 거두신 구주와 법적으로나 본질적으로 하나인 것이다. 이 사실이 극히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의 권위에 근거하여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롬 6:6..
마음을 일으키는 데에 너무 시간을 허비해온 것이 아닌가?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여호수아는 쓸데없이 주제넘게 처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하신 권위를 올바로 시행하고 있었다.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는 그의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하는 처지였으나,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서는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여 그들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일이 합당하며 필수적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복음의 순전한 사역자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모범을 남겼다. 오늘날의 목사가 여호수아의 모든 점에서 유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그의 이름으로 설교하고(요 13:20) 그의 회중들을 "다스리는 자"(히 13:17, 개역개정은 "인도하는". 역주)들이니,..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수 1:10). 그들에게 지시사항들을 하달한다. 그는 지파들의 두령들의 회합을 열어 그들 중 몇 명이나 그에게 협력할지를 알아보려 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조언이나 충고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아니다. 주의 뜻을 깨달았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였다"(갈 1:16)고 말씀한 사도처럼 처신했다. 그리고 망설이는 벨릭스처럼 "틈이 있으면"(행 24:25) 임무를 이행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도 않았다. "철이 뜨거울 때 내리쳐라"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양심의 가책이 있거나 혹은 성령의 충동이 있을 때에 즉시 응답하라. 아니면 이보다는 해야 할 임무가 선명히 드러날 때에 곧바로 그것을 시행하라. 뒤로 미루고 지체할수록,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일을..
믿음은 계명들을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보며 그리하여 그의 권위에 굴복한다. 약속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약속들을 진정 높이 받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듯이, 계명들 역시 그것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하시는 명령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양심으로 그것들을 높이 바라보고 의지로 그것들에 굴복하게 되지 않는 법이다.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실질적으로 믿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헛된 육신적인 것들을 물리치고 그 약속들을 보장해 주는 그것에서 행복을 얻기를 구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실질적으로 믿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자아 의지(self-will)의 경로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 명령들을 그 행복을 얻도록 인도하고 ..
5. 마지막 당부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종에게 주신 당부의 마지막 결론 부분이다. 용기를 가지라는 명령이 세 번째로 여호수아에게 주어진다. 이처럼 같은 명령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자연스런 추론은 그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의 기록을 보면 그런 결론은 합당하지 않다. 그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보낸 열 두 면의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열 명의 동료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담대히 반대한 사람과 아말렉과의 싸움(출 1-7장)에서, 그는 용맹을 지닌 사람임을 여실히 보여 준 바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이 ..
하나님의 진리를 소홀히 한다면, 진리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를 기대할 수가 없다. 말씀을 읽는 것이나 전해지는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저 일시적인 효과밖에는 얻을 수가 없다. 말씀의 일부분을 묵상하고 거듭거듭 우리의 뇌리에 쌓아두면, 그 진리에 대한 인상이 깊어지고 더욱 기억에 남게 되며, 또한 우리의 마음과 손발을 일으켜 일하게 하는 법이다. 하지만 여호수아에게 그저 일방적인 방식이 아니라 극히 특정한 의도를 갖고서 묵상을 명하고 있음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며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 구체적인 목적과 실천적인 목표를 갖고서 정신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라는 것이다. 곧 그저 명상에 젖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마음..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수 1:8).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야말로 모든 은혜와 영적 성장의 수단 중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묵상은 취사선택의 대상이 아니요 의무사항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사 지키게 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받은 명령은 그 자신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백성 모두에게 해당된다. 그리고 이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증언한 모든 말을 너희의 마음에 두고"(신 32:46).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잠 4:26). "너희는 자기의 행위를 살필지니라"(학 1:7). 주님은 "이 말을 너희 귀에 담아 두라"고 말씀하시는데(눅 9:44), 그 말씀을 자주 마음에서 ..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출 24:4)라는 말씀은 그 첫 기록자가 누구였는지를 말해준다.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대로 그 노정을 따라 그들이 행진한 것을 기록하였으니"(민 33:2)라고 말씀하는데, 신명기 1:2-3과 신명기 2:14을 비교해 보면 그 "노정"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첫해 초부터 삼십팔 년 말까지를 포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세가 이 율법을 써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자손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모든 장로에게 주어"(신 31:9) 그들이 보관하도록 했으며, 같은 장 26절에 의하면 그가 레위인들에게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고 지시했음을 알게 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