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Gleanings in Joshua 18]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18]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En Hakkore 2024. 2. 11. 10:25

2. 신적 확신

여호수아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 내용은 "자녀의 떡"의 본질적인 부분이요, 그들의 복된 삶에 필수적이다. 이는 교리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우리에게 가늠할 수 없을 만큼 큰 가치가 있다.🌱  

교리적으로는 지난 여러 세기 동안 최고의 신학자들이 깊이 다루어 온 주제, 즉 복음과 율법과의 관계에 대해 선명한 빛을 비추어 준다. 그런데 우리가 아는 한 이 부분의 말씀을 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근거로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여기서 여호수아와 모세와의 관계를 확실히 알게 되면, 복음이 율법과 갖는 관계를 깨닫게 될 것이다. 사실 이 두 사람의 상호 관계가 율법과 복음 사이의 주요 차별점 중의 한 가지를 개략적으로 시사해 준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인식해 왔다.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나안으로 인도한 사람이 모세가 아니라 여호수아였던 것처럼, 죄인이 자신의 의롭다 하심을 위해 바라보아야 할 것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멈추었다. 그들은 처음 시작부분부터 시작하여 그 주제를 추적해 들어가지 않고, 중간 부분에서 시작하여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하고 그친 것이다.

첫째,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에 대해 말씀하는 사실은 그가 "모세의 수종자"(1:1)였다는 것인데, 이는 출애굽기 24:13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모세를 대적하는 인물로서가 아니라, 그의 부하요 그를 지지하는 자로 제시된다.

이를 그 원형에 적용시키면, 복음과 율법이 서로 원수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류라는 것이 즉시 명백해질 것이다. 어쩌면 다음과 같이 반론을 제기할 분도 계실 것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아들이 율법에 굴복한다고 보는 것인데, 이것은 "그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답변은 "과연 성경이 무어라고 말씀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불확실성의 여지가 전혀 없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셨도다"(갈 4:4).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함" - 먼저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이루시고, 그 다음 그분의 죄악된 백성을 대신하여 그 형벌을 당하심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성취하려) 함" -이라고 말씀하셨는데(마 5:17).

이 문제에 대해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하고 두려움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둘째, 여호수아의 사명이 모세의 사명을 보좌하고 그가 시작한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것이었음이 신명기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인도해 내었고 광야의 여정을 통틀어 그들의 지도자였으나, 이스라엘을 이끌고 약속된 기업에로 들어가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맡겨졌다.

여기서도 우리는 여호수아와 모세 사이의 적대감을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이는 복음이 율법과 유지하고 있는 관계에 대한 복스럽고도 충격적인 예시(豫示)라 한다.

복음은 율법의 원수가 아니라 그 하녀요, 그 파괴자가 아니라 그 성취자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율법을 존귀하게 하시고 높이셨을 뿐 아니라, 구속함을 받은 그분의 백성들의 정서와 삶 속에서도 그 율법이 존귀하게 되고 높임을 받도록 하시는 것이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모세 아래에서는 율법을 받은 자들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율법이 그 정당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들은 모세에게 "당신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는 것을 다 우리에게 전하소서 우리가 듣고 행하겠나이다"(신 5:27)라고 선언했다.

그런 서원에 대해 여호와께서 불쾌히 여기신 것도 아니었다. 그처럼 스스로를 자랑하는 건방진 태도에 대해 전혀 정죄하지 않으셨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게 말하는 그 말소리를 내가 들은즉 그 일이 다 옳도다"(신 5:28).

그러나 그런데도 그들이 무지하나 여호와께서는 알고 계시는 그런 "연약함"이 그들에게 있었다. 여호와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고 말씀하시니 말이다"(신 5:29).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연약함"이 바로 여호와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었음을 배우게 된다. 바로 이것이 세상에 속한 자연인의 결핍 상태이다. 거듭 나기 전에는 아무도 하나님을 향해 경외심을 가질 수도, 그분을 사랑할 수도 없으며, 그것이 결핍된 사람에게는 그것들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도, 또한 순전한 노력도, 없는 법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엄숙한 말씀이다. 은혜라는 기적이 속에 베풀어지기 전에는 필자도 여러분도 모두 똑같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도 않고 굴복할 수도 없다.

이는 완전히 법이 없는 상태로서, 자기를 기쁘게 하기만을 결심하고 자기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는 상태인 것이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어 있고, 그분을 미워하며, 그분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거룩하심을 혐오하며, 그분의 주권적인 권위를 멸시한다. 그러나 중생시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 속을 환히 비추게 된다(롬 5:5).

정반대의 원리가 심겨져서, 하나님을 향한 미움을 대적하고 그 통치권을 파괴시킨다. 그리하여 중생한 사람의 한쪽에서 하나님의 법에 대해 급진적으로 변화된 기질과 태도가 생겨나게 되어, 결국,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노라"(롬 7:22, 25)라고 선포하게 된다.🫰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