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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31]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31]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En Hakkore 2024. 2. 12. 12:41

믿음은 계명들을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보며 그리하여 그의 권위에 굴복한다. 약속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약속들을 진정 높이 받들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듯이, 계명들 역시 그것들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과하시는 명령들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우리의 양심으로 그것들을 높이 바라보고 의지로 그것들에 굴복하게 되지 않는 법이다.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들을 실질적으로 믿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헛된 육신적인 것들을 물리치고 그 약속들을 보장해 주는 그것에서 행복을 얻기를 구하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명령들을 실질적으로 믿을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자아 의지(self-will)의 경로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 명령들을 그 행복을 얻도록 인도하고 우리를 제어해 주는 유일한 규범으로 받아들이고 그리하여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권위에 굴복하며 "순종하는 자녀처럼"(벧전 1:14) 처신하게 되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에 의식적으로 굴복하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영혼의 진정한 굴복을 일구어낼 수가 없다.

믿음은 명령들을 오직 전능하신 합법자로부터, 곧 절대로 사람이 시비를 걸 수 없는 분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는"(약 4:12) 분이심을 알기 때문이다.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명령들을 그렇게도 가벼이 여기고 멸시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와 의와 권능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는 자는 모든 것을 정산할 날이, 심판의 날이, 온다는 것을 알며,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계속 직시한다.🫰

히브리서 2:1-4은 마치 우리 자신이 시내산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법과 그 반포자의 위엄에 엄숙하게 압도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그러나 믿음은 하나님의 계명들의 권위뿐 아니라 그 탁월함도 깨닫는 법이다.

믿음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다"(롬 7:12)는 사실에 인(印)을 친다. 아니 더 나아가 사도와 더불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고 말씀하는 것이다(롬 7:22).

사도는 "내가...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롬 7:16)라고 선언했는데, 이 때에 그는 완전한 율법에 다스림 받기를 기꺼이 원하는 자신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저 수긍하는 것만으로는 충족하지 않다.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도 있어야 한다.🧡

"동의"란 판단과 의지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행동이다. 명령들은 하나님의 것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높이 기리고 받들어야 한다. 그 탁월함을 납득할수록, 그것들에 순종하는 일도 더 쉬어진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신 6:24).

사탄은 우리를 속여 하나님의 율법을 엄격하며 혹독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고자 하나, 성령은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님"을 확신시켜 준다(요일 5:3). 하나님은 계명과 약속들을 서로 뗄 수 없도록 만드셨다.

계명을 무시하면 결코, 약속들의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우리의 평화와 행복이 계명을 준수하는 여부에 달려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받아 주신다는 확신은 우리의 부지런한 순종보다 더 클 수가 없는 것이다(요일 2:4을 보라).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

하나님의 명령들이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을 다스리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유념해야 되겠다.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의 진실함을 원하시오니..."(시 51:6).

하나님의 명령들은 외향적인 이행만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자세와 순종하는 우리의 심정까지도 요구한다.🥹 탐심은 거짓말과 똑같이 죄악된 것이요, 근심은 도둑질과 똑같이 절망은 살인과 똑같이 죄악된 것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의 명령은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것이며,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요, 거기에 뒤따르는 약속도 마찬가지이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그는 우리와도 함께 하사 우리를 도우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명령들을 믿음의 기도로 바꾸어,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친히 우리 속에서 행하시기를 바라며, 그렇게 해 주시기를 그분께 간구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가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시 119:66)라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세 차례나 주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거기에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우리도 위함"(롬 4:23-24)이며, 바로 그 때문에 우리가 이 구절들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약속된 기업을 누리게 하기 위해 여호수아에게 주신 지시사항들은 우리가 우리에게 당한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훈령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하며, 믿음의 삶이란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들에 순종하는 삶이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권위에 우리 스스로 굴복하며, 그가 우리에게 주신 규범을 따라 우리의 삶을 영위해 가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기뻐하실 일들을 행할 수 있도록 그가 힘주실 것을 신뢰하는 데 있으며, 그의 약속들를 붙잡고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를 행하는 데 있다. 그러나 믿음의 삶은 중도에 닥치는 갖가지 난제나 위험요소에 결코, 굴하지 않는 견고한 마음을 요한다.🫰

육체와 세상과 마귀가 우리를 망하게 하려고 우리를 대적하여 진을 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저 얼마 동안만 그것들과 싸우고 그치는 것이 아니다. 평생토록 싸워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딤후 2:3)가 되기 위해서는 "강하고 담대"해야 하며, 행진이 힘들더라도 넘어져서는 안 되고 원수가 이기는 것 같을 때에도 낙심해서는 안 된다.

비록 작은 예비적인 싸움에서는 질 수도 있고 여러 날 동안 땅을 딛고 서기조차 힘에 겨울 수도 있으나, "끝까지 이기"면 - 이를 위해서는 끈기와 결단과 인내와 주를 신뢰함이 반드시 필요하다 - 승리가 확실한 것이다. 아멘! 💕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