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Gleanings in Joshua 33] 믿음의 응답(여호수아 1:10-18)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33] 믿음의 응답(여호수아 1:10-18)

En Hakkore 2024. 2. 12. 12:43

마음을 일으키는 데에 너무 시간을 허비해온 것이 아닌가?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여호수아는 쓸데없이 주제넘게 처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에게 부여하신 권위를 올바로 시행하고 있었다. 여호와의 종으로서 그는 그의 주인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하는 처지였으나, 하나님의 백성의 지도자로서는 자신의 권위를 행사하여 그들을 다스리고 통제하는 일이 합당하며 필수적이었다. 이 점에서 그는 복음의 순전한 사역자가 본받아야 할 훌륭한 모범을 남겼다.

오늘날의 목사가 여호수아의 모든 점에서 유사한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도께로부터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그의 이름으로 설교하고(요 13:20) 그의 회중들을 "다스리는 자"(히 13:17, 개역개정은 "인도하는". 역주)들이니, 그들의 말을 듣는 이들에게 존경을 받도록 스스로 위엄과 예의를 갖추는 것이 합당하다.

참된 복음 사역자는 교황도 아니요 얼굴만 내세우는 사람도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기업을 스스로 좌지우지하는 디오드레베처럼(요삼 1:9) 처신해서도 안 되고, 다른 이들에게 굴욕적으로 아첨하는 자처럼 처신해서도 안된다. 뻔뻔스러운 독재자와 굴종적인 아첨꾼 사이의 유쾌한 중도적인 역할이 있다.

오늘날 설교자들 중에, 마치 청중에게 그리스도와 그분의 대의를 좋게 보아달라고 구걸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이들은 너무 변명을 늘어 놓는 아양을 떨며 유약하여, 사람들에게서 존경받을 수가 없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여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사역자들이 멸시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가까이 있고 그분을 닮는 것"(Henry)인데, 그리스도께서는 "권위있는 자"와 같이 가르치신 것이다(마 7:29).

"이에 여호수아가 그 백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진중에 두루 다니며 그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동안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사 차지하게 하시는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들어갈 것임이니라 하라"(수 1:10-11).

여기서 "명령하여"가 반복되는 것이 놀랍다. 처음에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수 1:9)라고 말씀하셨고, 그 다음에는 그가 관리들에게 명령했고, 그들이 다시 백성들에게 명령했다. 성공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베푸신 권위의 시행과 그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이 필수적이었다.

오늘날 여호와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강한 역사를 보이시게 하려면, 이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들을 "권면하여 모든 권위로 책망하는 것"(딛 2:15)이 복음 사역자에게 필요하다면, 그분의 보살핌을 받는 이들에게는 그들을 "다스리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히 13:17)이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목사의 직분에 굴복할 것을 요구하신다. 이는 국가의 통치자들에게 복종할 것(롬 13장)과 가정에서 남편에게와 부모에게 복종할 것(엡 5:22; 6:1)을 요구하신 것과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집에서도 권징의 질서가 유지되어야 하는 법이다.

"양식을 준비하라"(수 1:11).

여정을 앞두고 있고, 격렬한 전쟁이 그들의 앞에 놓여있었는데, 이를 예상하고 그들에게 주어지는 명령은 바로 "양식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이 명령의 영적인 의의와 적용의 필요성이 분명히 드러난다. 강하고 용맹한 자세를 갖추어 전쟁에 대비하게 되려면, "믿음의 말씀"(딤전 4:6)의 자양분을 잘 받아야 한다.

"양식"은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지만, 우리가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어디서도 게으름을 격려하시지 않으신다. 이 명령을 귀담아 잘 따르지 않으면 우리의 원수들을 이길 수가 없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 때의 이스라엘에게는 물론, 오늘날 우리에게도 직접적으로 주시는 것이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5, 9)라는 약속은 우리 스스로 전용하면서도,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양식을 준비하라"는 명령은 무시해 버린다면, 극악한 부정직의 죄를 짓는 처사일 것이다.

"양식을 준비하라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 갈 것임이니라"(수 1:11).

강을 건널 다리가 없었으므로, "배를 준비하라"는 명령을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홍해에도 다리가 전혀 없었지만, 이스라엘은 배가 없어도 안전하게 건넜다.

헨리(Henry)가 지적했듯이, "그가 독수리 날개에 태워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으니 가나안에도 그처럼 인도하실 것"이었다. 이때에 여호수아는 분명 그렇게 기대했을 것이다. 그와 그의 휘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면 하나님의 도우심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하여 그는 "이 요단"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요단 강이 아무런 어려움이 되지 않으니, 그들 역시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사흘 안에 너희가 이 요단을 건너...갈 것임이리라" : "건너갈 수 있으리라"거나 "건너기를 시도할지니라"도 아니었다. 이는 충만한 확신의 언어였다. 백성들도, 여호수아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고,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었다.🫰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말씀을 먹이고 그들을 인도하는 자들의 심정이 바로 이와 같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의 용기를 북돋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을 침체에 빠지게 만들게 될 것이다.

여기의 "사흘" 속에는 한 가지 중요한 모형적이며 영적인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사흘"은 부활의 숫자이다. 그리스도인이 스스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자로서 처신할 때에 비로소 육체와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게 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믿음과 순종을 시행하는 일이 필요하다.

내가 하나님이 나를 보시듯 믿음으로 나를 보며, 믿음으로 나 자신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동참하는 자로 바라보며, 믿음으로 죄와 사망과 사탄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내 것으로 삼는 것이다.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