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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nings in Joshua 30]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본문

강해시리즈/여호수아 강해 (Gleanings In Joshua)

[Gleanings in Joshua 30] 위대한 명령(여호수아 1:1-9)

En Hakkore 2024. 2. 11. 10:56

5. 마지막 당부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종에게 주신 당부의 마지막 결론 부분이다. 용기를 가지라는 명령이 세 번째로 여호수아에게 주어진다. 이처럼 같은 명령이 반복되는 것에 대한 자연스런 추론은 그가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앞의 기록을 보면 그런 결론은 합당하지 않다.

그는 모세가 가나안 땅을 정탐하기 위해 보낸 열 두 면의 정탐꾼 중의 한 사람이었다. 열 명의 동료들의 부정적인 보고에 담대히 반대한 사람과 아말렉과의 싸움(출 1-7장)에서, 그는 용맹을 지닌 사람임을 여실히 보여 준 바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에게 이 명령을 세 번씩 반복하는 것을 합당하게 여기신 것이다.

헨리(Henry)는 이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은혜가 있는 자들은 그 은혜를 시행하고 그것을 발전시키도록 거듭 거듭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 명령은 여호수아가 소심한 사람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믿음을 시행해야 할 상황들이 닥치게 될 것임을 말씀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물리적인 용기와 더불어 도덕적인 용기가 있는데, 물리적인 용기를 지닌 자들이 모두 도덕적인 용기는 지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수의 포화 앞에서는 전혀 물러섬이 없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모습이 들킬까 두려워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온갖 난관들에도 굴하지 않고 온갖 실패들에도 움츠러들지 않는 정신력과 의지력도 있다.

여기서 또 주목해야 할 것은 용감히 행하라는 세 차례의 명령이 그저 같은 내용의 반복이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6절에서 여호수아가 강하고 담대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은 그의 앞에 주어진 임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임무가 물리적인 용맹을 요하는 것이었다. 7절의 명령은 개인적이고 도덕적인 용기에 관한 명령이었다

"율법을 다 지켜 행하라"(수 21:6).

동료들의 조언을 구하지도 말고, 그들의 비판을 두려워하지도 말고, 오직 "율법책"에 준하여 처신하라는 것이었다. 새로운 책략들을 좇는 것보다 옛 길을 지키는 것에 더욱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하나님의 계명의 길을 걸어가기 위해서는 결연한 마음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수 1:9).

이것은 그저 영적인 용기를 시행하라는 명령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지하는 만큼 뒤로 움츠러들 소지가 다분하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오히려 자기 자신의 외부로 눈을 돌려서 다른 분의 강력한 힘을 붙잡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그의 종에게 마치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지 않는가? 내가 네게 맡긴 일이 과연 크나 큰 일이다. 그러나 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그러한 하나님의 보증을 염두에 두었다면, 여호수아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명령을 주신 바로 그분이 그 명령을 수행하도록 힘을 주시는 분이시니, 오직 그분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시고 고난을 당하신 것이다.

"오직 내가...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요 14:31).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의 명령들이, 그의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믿는 자에게 주어진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과연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가 믿고 우리의 규범을 취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 전체이다.

주께로 돌아가 사랑으로 그분께 굴복하게 된 사람은 그 말씀의 한 부분은 즐거워하고 또 다른 부분은 멸시하는 식의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속한 모든 것 하나하나를 다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그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어떤 의미에서는 현재의 임무를 납득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미래의 약속들을 확신하는 것보다 더 쉽다. 하나님의 계명들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죽은 것이니 말이다. 믿음은 사랑을 통해 역사한다(갈 5:6).

하나님이 내게 명하신 바를 행하는 것이 아니면 과연 어떻게 나의 사랑을 표현한단 말인가?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시 119:66).

우리는 어떠한가? 이 진술이 나타내는 뜻을 선명히 깨닫는가? "주의 계명들을 믿는다"는 것은 그 계명들 속에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기꺼이 바라고 기다린다는 뜻이다. 곧 마음이 적절히 감동을 받고 우리의 행위들을 거기에 따라 규정한다는 것이다.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과 관련 짓는다. 하나님의 성품과 그의 속성들을 대면하게 하고, 또한 그것들을 지각하여 우리의 심령에 정당한 영향이 미치게 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역할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은 물론 그의 위엄도 진정으로 바라보며, 그의 은혜 안에서 진정으로 즐거워하며 동시에 그의 권위에 굴복한다. 약속들은 물론 명령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약속들은 물론 명령들 역시 하나님의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요 따라서 동일하게 그것에 응답해야 한다. 계명들은 하나님의 뜻의 표현으로서 우리의 임무를 규정하는 것이요, 감각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사실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 이외에는 그 어떠한 순종도 합당한 것이 아니다(히 11:8). 아멘!

Arthur W. Pink 여호수아 강해 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