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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강해 1] 서론 1 본문

강해시리즈/창세기 강해 (Gleanings In Genesis)

[창세기 강해 1] 서론 1

En Hakkore 2024. 3. 12. 18:12

예로부터 창세기는 "성경의 모판"으로 일컬어져 왔는데, 그것은 참으로 합당한 이름이다. 창세기에서 거의 모든 위대한 교리들이 싹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이어지는 책들에서 보게 되기 때문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천지의 주인인 지극히 높은 자"로서뿐만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언약의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계시된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즉 신성(神性) 안에 있는 인격의 복수성의 첫 암시를 보게 된다.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

창세기에서 인간은 먼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다음으로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존재로서,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이켜진 존재로서 나타난다. 인간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으며(6:8), 하나님과 동행하며(6:9),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약 2:23). 💕

창세기에서 사탄의 간계가 폭로된다. 우리가 "그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닌" 것은 성령께서 여기에서 그것을 충분하게 나타내셨기 때문이다(고후 2:11). 사탄이 역사(役事)하는 영역은 도덕적인 영역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의(異意)를 제기하며, 그것의 순전성에 의문을 던지며, 그것의 진실성을 부인한다.

창세기에 주권적 선택의 진리가 처음 나타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우상 숭배하는 백성들로부터 뽑아내시고, 그를 선택받은 나라의 조상으로 삼으신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버리시고 이삭을 부르신다.

창세기에 주권적 구원의 진리가 모형적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타락한 첫 조상들에게 하나님 자신이 가죽옷을 입혀 주신다. 가죽을 얻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죽음이 들어와야만 했으며, 피가 흘려져야만 했으며, 죄인을 대신하여 무죄한 짐승이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오직 이런 방법에 의해서만 사람의 수치가 가려진다. 그리고 오직 이런 방법에 의해서만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다.

창세기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을 받는 진리가 처음 여기 나타난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의로 여기시고"(15:6).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 순종한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을 사랑한 것도 아니었고, 하나님을 섬긴 것도 아니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믿었을 뿐이며, 바로 이것이 그에게 의로 여기심을 받는 것이 되었다. 아브라함이 의로 "여기심"을 받았다면, 그것은 그 자신의 의가 아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자로 간주되었을 뿐이다.♡

창세기에 신자의 안전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심판의 홍수가 땅에 임하여 죄 가운데 빠져 살던 땅의 모든 백성들을 삼켰다. 그러나 여호와께 은혜를 입은 노아는 방주 속에서 안전하게 보존되었다.

창세기에서 분리(separation)의 진리가 분명하게 가르쳐진다. 에녹은 악이 가득한 시대에 살았지만, 세상과 분리되어 하나님과 동행했다. 아브라함은 우상 숭배로 가득 찬 갈대아 우르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킨 채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행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롯은 우리 앞에 불신자들과 다른 멍에를 메지 않고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한 것에 대한 두려운 결과를 보여 주는 엄숙한 표본으로서 제시된다.

창세기에 잘못을 범한 신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징계의 회초리가 나타난다. 야곱은 영을 따라 행하는 대신 육체를 따라 행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여 주는 분명한 표본이다. 그러나 종국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인간의 연약함을 이긴다.♡

Arthur W. Pink 창세기 강해 p8

■ 야고보서 2장 23절.
"이에 경에 이른바 이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 고린도후서 2장 11절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