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8/06 (15)
En Hakkore
목숨을 버리신 그리스도(요19:25-42) 요한복음 19장의 종결 부분을 분석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예수의 어머니와 그의 사랑하시는 제자(25-27절) 2. 목말라 하신 구세주(28,29절) 3. 승리의 죽음을 죽으신 구세주(30절) 4. 하나님께서 구세주의 시체를 보호하심(31-33절) 5. 옆구리를 찔리신 구세주(34-37절) 6. 요셉과 니고데모의 담대함(38,39절) 7. 묻히신 구세주(40-42절) 복음서 저자들은 우리 주님의 죽으심에 관한 세부 사항을 제각기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의 탄생, 세례, 그리고 그의 시험받으심은 단지 두 복음서에만 기술되어 있다. 그의 기적들과 이야기들 중 몇 개는 오직 하나의 복음서에서만 발견된다. 그런데 구세주의 수난은 사복음서에 다같이 기록되어 있..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19:23). "군인들은 자기들의 잔인무도한 일을 다 끝마쳤기 때문에, 즉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머리 위에 패를 붙여 십자가를 세웠기 때문에 이제 그들이 늘 했던 일, 곧 죄수의 옷을 자기들끼리 나누어 갖는 일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으로 사형을 당하는 자의 옷은 사형집행인의 몫으로 주어진다. 우리 주님의 옷도 그러하였다. 그들은 우리 주님의 손발을 십자가에 못 박기 전에 아마 옷을 다 벗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자기의 일을 다 끝마칠 때까지 그것을 한 쪽에 치워 두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제 그 옷 쪽으로 와서 그러한 경우에 늘 했던 대로 그것들을 나누어 가졌다"(라..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19:20). 성령께서 "히브리 말"을 선두에 위치시키신 점에 주목하라. 히브리어는 유대인의 언어이다. 헬라어는 교육받은 자들의 언어이다. 라틴어는 로마의 언어이다. 그러므로 십자가 둘레에 모여 있던 모든 사람들은 각기 제 말로 그 명칭을 읽을 수 있었다. 언어가 혼란케 된 것은 바벨탑의 저주의 표지임을 상기하라(창 11장). 우리가 여기에서 그것을 상기해야 하는 것은 그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로 삼아지셨기 때문이다! 히브리어는 종교어이며, 헬라어는 과학과 문화와 철학의 언어이다. 또한 라틴어는 법률어이다. 그 개개의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왕"이신 것이다♡ 종교계에 있어서 그는 참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시이시며(히 1:2; ..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19:19). "이와 같이 그는 왕으로서, 진정한 '유대인의 왕' 으로서 죽으셨다. 그러나 그 말의 완전한 의미를 숙고해 볼 때 거기에는 훨씬 더 많은 것이 함축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 패는 유대인, 헬라인, 그리고 로마인을 향하여 각자에게, 각자의 언어로, 각각에게 해당하는 의미를 확실하게 단언해 주고 있었다. 그의 원수들은 그 말을 못 본척 하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그것은 공연한 짓이었다. 여기에 실로 독특한 방식으로 단언된 진정한 하나님의 왕, 살아서와 마찬가지로 죽어서도 왕이신 하나님의 왕이 있다.♡ 왜냐하면 이 후로부터 그의 십자가가 그의 권세와, 그리고 그들이 숭배에 넘치는 존경..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히브리 말로 골고다)." 이 표현은 구세주의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과 관련하여 두 번 사용되었으며(19:13,17), 그 밖의 예로서는 요한복음 5:2에서 유일하게 발견된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좋은 대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여기의 골고다에서는 그들의 잔인무도함을 본다! 누가는 이방인의 명칭인 "갈보리(해골)"(23:33) 라고 기록하고 있다. 반면에 히브리인인 요한은 구세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장소를 "골고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빌라도의 재판석이 있는 곳에 관한 두 개의 이름을 비교해 보라(19:13). "이중의 명칭으로 표현된 이 예들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그가 자기 백성들과 함께 사용하신..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예수를 데려가니라]” (19:17). “데려가다(led)”는 말에 주목하라. 성령께서는 그 말을 자주 반복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반항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억지로 떠밀려 가시거나 끌려가지 아니하셨다. 오래 전의 구약 시대에 예언된 바 있는 것처럼 “그는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led, 곧 데려가지다) 어린 양과 같으셨다”(사 53:7).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19:17). 유대인들은 시간을 지체하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곧장 가바다에서 골고다로 끌고 갔다. 다시 말해서, 그는 심판을 받으신 후 곧바로 사형 집행을 당하신 것이다. 구세주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브라함이 번제..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그것은 그 유대인들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고난을 겪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온 세상이 무거운 멍에 아래 짓눌리고 있었다. 그들이 그리스도의 가벼운 멍에보다 그것을 더 좋아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이사에게 매우 넌더리가 나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단속적인 운동을 보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때때로 그를 제거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항상 '우리에게 더 나은 통치를 해주시오' 라고 외치곤 했다. 그러나 그들이 의심스러운 개선을 함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해야 그 정부를 수많은 소 가이사로 분할시키는 것 뿐이다. 그들이 그 편을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런 정부는 더 약하고..
사형선고를 받으신 그리스도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19:14). 그는 분명히 조소하고 경멸하는 어조로 이 말을 했다. “그들이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19:15). 이 앞에서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사적으로 호소했던 것들이 실패했었던 것처럼 그의 이최종적이고 공적인 호소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 번 격렬하고 무자비하게 소리치며 그 죄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요구하였다. 그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그의 피뿐이었다. 그는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작정해 두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요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작정은 사랑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은 증오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