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8/22 (8)
En Hakkore
"여호수아가 그들을 불러다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 거주하면서 어찌하여 심히 먼 곳에서 왔다고 하여 우리를 속였느냐"(수 9:22).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수아가 이처럼 스스로 절제하는 이 복된 모습을 높이 기리는 마음으로 잘 관찰해 보자. 그 기브온 주민들은 이제 자신의 처분에 전적으로 맡겨진 처지인데, 그는 자기의 힘을 폭군처럼 마구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의 속임수에 대해 화를 발하거나, 비열한 거짓말쟁이라고 그들을 탄핵하지도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들의 거짓말에 대해 가볍게 질책하고서 그들 스스로 그 일에 대해 해명할 기회를 주었다. 헨리(Henry)가 올바로 지적한 것처럼, "의로운 대의는 그것을 방어하려고 화를 낼 필요가 없고, 악한 대의는 화를 내도 더 나아지지 않는 법이다"인 것이..
신명기 6:13에서 나타나는 대로, 엄숙한 맹세로써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가 되기도 한다. 곧 맹세가 없이는 적절히 해결될 수 없는 그런 문제들을 결정짓기 위해서 피치 못하게 맹세하는 경우이다. 여기서 살펴야 하는 것은 맹세를 요구하고 맹세가 정당한 것으로 보증을 받은 일은 시내산에서 율법이 베풀어지기 여러 세기 이전이었다는 점이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에게 맹세했고(창 21:23-24), 또한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종을 보내면서 그에게 맹세를 요구하기도 했다(창 24:8-9). 야곱은 라반에게 요셉은 그의 아버지에게 맹세했다. 이런 사례들이 모세의 율법 제정과 관련이 없으므로, 우리로서는 그리스도인의 시대에도 맹세를 금지하는 것이 전혀 없다고 결론짓게 된다. 바울 역시 하나님을 증인으로 불러..
4. 존귀한 맹세 "우리가 그들에게 맹세한 맹약으로 말미암아 진노가 우리에게 임할까 하노니 이렇게 행하여 그들을 살리리라"(수 9:20). 앞 절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족속의 일부 사람들에게 속임을 당한 사실을 보았다. 그들은 지극히 먼 나라에서 온 것처럼 속이고, 자기들이 자기 민족을 위해 여호수아와 평화 조약을 맺을 권한을 지닌 사신들인 것처럼 행세했다. 그 사기꾼들은 그럴듯한 이야기를 준비한 것은 물론 멀리서부터 온 사람들인 것처럼 헤어진 의복가 썩은 양식 양식들까지도 철저히 준비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족장들은 이 일에 관해 여호와께 뜻을 묻지 않고, 자기들이 감각에 의존하여 눈에 보이는 대로 처신했다(수 9:14). 결정을 유보하고 기브온 주민들이 주장을 면밀히 조사하는 대신, 이스라..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이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수 9:18). 이스라엘의 족장들이 다시 부활의 땅으로 돌아갔다는(여호와와의 교제를 회복하고 스스로 중생한 사람들로 처신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여기 나타난다.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이 그들에게 있었고, 그들은 그에 따라 처신했다. 만일 육체에 따라 처신했더라면, 그들은 "그때 그때의 정황"에 따라 행하기를 주장했을 것이다. 곧 기브온 주민들이 거짓말을 했으니 그들과 맺은 조약은 원천 무효라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었다. 육신의 생각은 상대방의 거짓으로 인해 맺어진 언약이니 전혀 구속력이 없다는 식으로 추론한다. 그러나 그 족장들은 그런 식의 부패한 원리를 따르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뱉은 ..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수 9:16). 이는 다른 각도에서 본 것일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속임수는 곧바로 발각된다는 것이 하나의 일반적인 법칙이기도 하지만, 하나님을 향해 참된 마음을 쏟는 자들에게는 그가 그들이 속임을 오래 당하도록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것도 똑같이 사실이다. 그들은 밤이 아니라 낮에 속한 자녀들이요, 따라서 길가에 놓인 장애물들에 걸려 넘어져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주님은 이렇게 선포하셨다. "나는 세상이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에는 그분을 "믿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하나도..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미리 계획하여 범하는 것만이 죄가 아니다. 기브온 주민들과 언약을 맺은 여호수아의 과실은 고의적인 불순종이 아니라, "과실에 미혹된"(갈 6:1) 면이 더 많았고, 여호와께로부터 뜻을 구하지 않고 급하게 처신함으로써 범한 실수였다. "과실의 미혹되는 것"은 죄를 계획하고 모의하는 것과 매우 다르다. 고의적인 범죄가 아니라 부주의함으로 빚어진 실수이니 말이다. 그리스도인 자신에게 고유한 힘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서는 것이요(롬 11:20), 믿음은 자기를 신뢰하는 것과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기도하며 경계하고 스스로 절제하지 않으면, 갑작스럽게 엄습하는 유혹의 강력한 힘에 압도되거나 자신의 죄악된 정욕의 열기에 넘어가기 십상..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5). 이는 여호수아에게는 명예로운 기록이 아니지만, 성령에 감동받은 역사가의 철저한 신빙성을 드러내 준다. 성경은 극히 유명한 인물들의 오점들을 기록하는 데에 편파성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은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대적하는 자들에게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스 4:3) 라고 답했는데, 여호수아 역시 기브온 주민들에게 그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지속적으로 증언하기 위해, 그분의 백성은 세상의 구별된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자들과 조약을 맺고 있다. 불경한 자들과 분리된 삶을 살도록 부르심 받은 성도의 증언을 망치는..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롬15:4). 그러나 이 본문들을 그냥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 말씀에서 진정 유익을 얻기 위해서는 각 사건을 면밀히 살피고, 세세한 내용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따져보고, 우리 마음에 새겨야 한다. 훌륭한 성도가 실패한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게으름을 조장하거나 우리를 실망에 빠뜨리기 위함이 아니라, 영은 원하지만 육체는 연약하다는 것을 실례들을 통해 깨닫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특히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권면의 절실함을 알게 하기 위함이다.👍 무언가 고통스러운 일을 당해 영적 각성을 얻은 후, "이번에 이 일을 통해 정말 큰 교훈을 얻었다" 이제 이런 식으로는 또다시 속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