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23 (15)
En Hakkore
1. 닫혀진 성 이제 우리는 이 책에 기록된 사건 중에 가장 흥미롭고 가장 교훈적인 사건, 즉 가나안 사람들의 주요 요새였던 것으로 보이는 여리고 성의 함락을 다루게 되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어떤 면에서 서론적이요 예비적인 것들이었고, 이제야말로 이스라엘이 해결해야 할 진짜 과제가 그들 앞에 놓여 있었다.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경건한 유산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야 했으니 말이다. 그들은 이미 요단 강을 건널 때에 주께서 그분의 권능으로 역사하신 사실에서 극히 큰 격려를 받은 바 있다. 할례의 중요한 의무를 준수하고 유월절을 지켰으니, 이제 그들은 앞으로 전진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을 보여 주는 하나의 놀라운 비유가 아닐 수 없다! 중생이라는 이적을 경험한 ..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의 형체로 사람들에게 나타나신-때로는 환상 중에(겔 1:26; 단 10:5-6), 때로는 예언 중에(시 89:17; 단 7:13), 때로는 손에 잡히도록(창 32:24; 수 10:13)-이런 여러 가지 예들은 장차 말씀이신 성자께서 육체가 되실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고 복된 교감을 통해 교회로 하여금 그 머리이신 성자의 위격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실례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성도에게(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아닌!) 그분의 사랑을-그가 "인자들을 기뻐하심"(잠 8:31)을-친밀하게 드러내신 사례들이었다.🍒 주 예수께서 과거 오래 전에 세상에서 사랑을 갖가지 다양한 방식으로-환상과 실질적인 계시를 통해 모형과 손에 잡히는 현현을 통해서-자신의 인격적인 사랑을 그분의 백성에게 보이..
그런데 여기 의문이 생긴다. 곧 구약의 다음과 같은 본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다.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창 32:3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출 24:10). 여러 구절에서 하나님이 그저 환상이나 상징물 속에서만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실제로 나타나시기도 하는 것을 본다. 예를 들어 모세에게 그렇게 나타나셨다.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해 주실 것으로 여기고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것을 핑계 삼아 우리의 할 일을 거부해버리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주제 넘은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곧 그가 친히 이적적으로 고기들을 가득 잡게 해 주실 것이면서도, 베드로에게 명하셨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눅 5:4). 우리 자신의 이해력에 의지해서도, 우리 자신의 힘에 의존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이해력과 힘을 발휘해야 한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그를 만나셨다! 우리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야 그분의 도우심을 기대할 수 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여기서 두 개의 동사가 함께 사용되는데, 이는 여호수아의..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5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는 것'은 그분과 교제하고 싶어하는 열망, 그분만 따라가겠다는 간절한 열망을 보여주는 말이다. 만일 이 열망이 없다면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자 중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시 63:8). 이 말씀 속에는 그분의 인격의 완전하심을 보고 그분 위에서만 움직이겠다는 믿음이 묘사되어 있다. 그분과 함께 영원히 있을 소망뿐만 아니라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요 14:21) 그분을 만나고 싶어하는 소망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그와 분리되는 것을 결코 만족해 할 수 없는 사랑도 그려져 있다. 이는 곧 이 세상에서는 방랑자와 이방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이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4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간". 등불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자기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기 등불을 말아래 둔 비밀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12:35에 그들의 모습이 설명되어 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그 주인이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같이 되라". 주님은 요한에 대해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요 5:35)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등잔을 가진 처녀들이 암시하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그들은 곧 닥치게 될 어두움을 대비할 적절한 도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수단은 말씀이다. 말씀은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3 "그때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마 25:1) 이 말씀은 신부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비유한 말씀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부의 수자가 너무 많고 또 그리스도인의 전체적인 신앙고백을 가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소위 '처녀'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중생한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볼 때 그들 전부를 '신부'라고 보는 견해가 옳지 않다. 이처럼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의 좋은 고기, 나쁜 고기나 알곡과 가라지 비유처럼 골라내는 일에 대한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 비유를 주님이 그 제자들에게 하셨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 대답은 그들 중에도 유다 같은 이..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2 우리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5:1-13에서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문제와 주제가 같은 현상에 대해 경고하셨다. 나는 이 구절의 신학적 문제를 다루며 시간을 소비하고 싶지는 않다. 이 구절이 갖는 '예언적'인 암시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여기서는 무가치하므로 성도의 삶에 있어서 매우 실제적이고 중요한 점에 대해서만 논의하려고 한다. 첫째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처녀 비유를 난잡한 무리를 향해 하시지 않고 당신의 바로 그 제자들에게 하셨다는 사실에 주의하라.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13절). 여기서 주님은 그의 제자들이 그의 제림시에 놀라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또한 그의 재림시에 주님을 환영하고 맞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