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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91]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3. 10:56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4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간".

등불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들이 자기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했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자기 등불을 말아래 둔 비밀의 제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알려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누가복음 12:35에 그들의 모습이 설명되어 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그 주인이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같이 되라". 주님은 요한에 대해 "요한은 켜서 비취는 등불이라"(요 5:35)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등잔을 가진 처녀들이 암시하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

그들은 곧 닥치게 될 어두움을 대비할 적절한 도구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근본적인 수단은 말씀이다. 말씀은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등불이라는 헬라어가 눅 12:35; 요 5:35에도 사용되었다)과 같다"(벧후 1:19).

또한 그들은 그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고 있었다. 하루종일 일하느라고 피곤한데 그런 몸으로 밤새 병간호를 해야 했던 경험이 이쓴 사람만이 그 고통을 이해할 것이다. 성도들은 말씀이, 먹고 살 '빵'이나 원수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해 사용할 '칼'일 뿐 아니라 조명기구로도 주어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니이다"(시 119:105). 사랑하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내가 꼭 걸어가야 할 그 길을 비춰주는 등불말이다.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 이 말씀은 우리가 등불을 사용하는 목적과 하나님의 언약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다.

주님을 만나러 나간다는 것은 외적인 행동과 내적인 행동 모두를 다 말하는 것이다. 외적으로 이 행동은 세상, 특히 정욕과의 절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세상에 빠져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한 우리와 만나주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고후 6:14-17)라는 말씀은 "신랑을 만나기 위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다. 특별히 그들이 신랑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행위는 볁절한 교회 조직에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리스도를 배척한 유대교를 버리신다고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마 23:37, 38).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그들 역시 "영문 밖으로 나가야"(히 13:13) 할 것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의 복된 교제를 갖기 원하고 또 그리스도를 만나기 원한다면 그는 이 세속적인 세계에 대해 갖고 있던 친교를 끊는 길을 가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으뜸으로 모시지 앟는 그 어떤 신앙 세계라도 배척해야만 한다.

이는 자기를 부인하고, "그분의 꾸지람을 참아 들을 것"을 요구한다. 우리가 얼마나 그분을 의지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열도(熱度)는 우리가 그분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달려 있다. 이것은 내적인 사랑의 활동들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 즉 자기의 욕망과 원하는 것의 대상을 하나님으로만 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또한 그리스도께 은혜를 구하며 그분만을 뒤좇아 가는 것을 의미한다. 다윗이 그러했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정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여호와를 깊이 사모하여 부지런히 찾지 않는 한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 자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여호와를 깊이 사모하고 부지런히 찾는 것, 그것이바로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