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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92]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3. 10:57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5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는 것'은 그분과 교제하고 싶어하는 열망, 그분만 따라가겠다는 간절한 열망을 보여주는 말이다. 만일 이 열망이 없다면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자 중에 속해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시 63:8). 이 말씀 속에는 그분의 인격의 완전하심을 보고 그분 위에서만 움직이겠다는 믿음이 묘사되어 있다. 그분과 함께 영원히 있을 소망뿐만 아니라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요 14:21) 그분을 만나고 싶어하는 소망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며 그와 분리되는 것을 결코 만족해 할 수 없는 사랑도 그려져 있다. 이는 곧 이 세상에서는 방랑자와 이방인으로 살겠다는 결심이며,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는 저 하늘의 것들을 바라며 사모하겠다는 결심이다.

이는 곧 자기 자신을 벗어나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자신을 우리에게 주신 그분께 흡수되는 것이다. 오직 그렇게 할 때에만, 그분은 실제적으로 우리를 만나주시며, 기쁨으로 채우시며, 교제해 주신다. "신랑을 맞으러 나갔다"는 것은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분을 열망하는 것이며 그분만을 고귀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빌 3:6,8).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마 25:6).

이 얼마나 애처로운 모습인가! 또 얼마나 엄숙한지! 신랑이 지체하는 그때 그들은 실패하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과 같이 지속하지 못하였으며 처음의 매력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부과된 큰 사명을 계속 감당하지 못하고 선을 행하다가 지쳐버렸다.

우리는 이 말씀의 '예언적' 성취문제에 골몰하기보다 우리의 마음이 이 말씀에 비춰 조사하고 살펴야 하겠다. 이 말씀이 오늘날 기독교인 전체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보다는 나 개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이 말씀의 핵심이 '나는 졸며 자고 있는 성도가 아닌가'라고 묻고 있는 점이 아닌가? 이 질문은 쉽게 대답되어질 수 있는 질문인가? 내편에서는 내가 아주 잘하고 있고 모든 것이 순조로운 것같이 느껴지지만 그런게 아니다. 하나님편에서는 내가 인간의 인기를 얻기 위해 위선자 노릇하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말할 때 베드로의 심정은 결코 자랑스럽지 못했다. 그러나 주님께 이맞추며 인사했던 유다는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내가 영적으로 자고 있는지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하려면, 우리는 먼저 자고 있는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먼저 잠이 들었을 때의 특징이 무엇인지 설명하도록 하자. 식자(識者)인 체하지 않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잠들었을 때의 몸의 상태는 잠자는 영혼의 상태와 유사하다. 잠자는 육체는 활동성이 없으며 모든 지체는 쉬고 있다.

정신기능이 정상을 벗어나 쉬고 있기 때문에 무의식의 상태에 빠져 있다. 따라서 위험을 느끼지 못하며 구제불능성이다. 영적인 잠에 빠진 사람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그런 성도는 그 영혼 기능이 작동하지 않으며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마음은 거룩한 것에서 관심을 끊게 되고, 그 받은 바 은혜를 보존하지 못하게 되며, 나태하고 게으름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대진리들, 그리고 죄와 은혜, 천국과 지옥에 대한 진리들을 들어도 그것이 그에게 생생하거나 효과적이지 못하며, 그는 곧 흐리멍텅한 상태로 돌아간다.

잠자는 믿음은 비활동적이다. 목표를 지향하지 못하며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백성에게 유효한 충만한 은혜를 의지하지도 않으며 말씀의 약속을 따라 살지도 않는다. 진리에 대해 지적으로는 동의하지만 실제적인 거룩에 관해서는 더 이상 감동을 받지 못한다.

그런 성도는 감사, 주님에 대한 경외심, 주를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산다기보다는 전통과 감정, 공상 등에 의해 지배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소망이 약해질 때도 그는 곧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소망이란 앞으로 다가올 복에 대한 간절하고도 열망적인 기대이다.

소망이 있는 자는 자기 자신이나 이 세상의 것들을 멸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들'에 대해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그 눈으로 목표와 상급을 보기 때문에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인내로써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소망에 잠자게 될 때 그는 이 세상이나 감정에 빠지게 되며 현세적이고 일시적인 것들에 현혹되고 미련해지게 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활발하지 못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사라지게 된다.

자기를 사랑하게 되며 자기 연민에 빠지게 된다. 자기를 부인하라고 강권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고 주님이 우리에게 남기신 그 모범을 따라갈 것을 요구하시는 그 사랑이 그쳐졌다면 그 영혼은 잠든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