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실천 90]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90] 그리스도인의 삶의 진보

En Hakkore 2024. 4. 23. 10:56

제 5장 졸고 있는 성도들 3

"그때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마 25:1)

이 말씀은 신부의 사랑에 대한 태도를 비유한 말씀은 아니다. 왜냐하면 신부의 수자가 너무 많고 또 그리스도인의 전체적인 신앙고백을 가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나오는 소위 '처녀'들은 두 그룹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중생한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렇게 볼 때 그들 전부를 '신부'라고 보는 견해가 옳지 않다. 이처럼 비유는 마태복음 13장의 좋은 고기, 나쁜 고기나 알곡과 가라지 비유처럼 골라내는 일에 대한 비유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 비유를 주님이 그 제자들에게 하셨느냐고 질문할 수 있다. 그 대답은 그들 중에도 유다 같은 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처녀들에 대해 생각하려는 것은 논지에서 벗어나는 일이지만, 그들은 외적으로 볼 때 '지혜로운' 처녀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들은 신앙이 없었지만 부도덕한 여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교인들이었고 "('우리 주'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벧후 2:20) 사람들일 뿐이며, 그 마음에 기적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비록 그들이 그 손에 등불은 가졌으나 그들은 '그릇에'(3,4절)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즉 그들의 영혼은 은혜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작가와 독자 모두 자기 자신을 정직하고 주의깊게 잘 살펴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벧후 1:10)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그때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주님의 제자를 상징하는 표현들은 참 다양하고 많다. 그들은 소금, 빛, 양, 산 돌, 왕과 제사장 등으로 불린다. 유형적인 능력이 총체적으로 표현된 교회는 어린 양의 '아내'(wife)라고 표현한 반면, 개별적인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은 "그 동무 처녀"(시 45:14; 아 8:13; 계 1:9)라고 이름 붙여져 있다.

그들은 신앙이 순결하기 때문에 '처녀들'이라고 불린다. 아무리 인격이 훌륭하고 외적인 행위에 흠이 없어도, 근본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없다. 그래서 사도는 잘못된 교사에 대한 소식을 듣고 지역 교회에 편지하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안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또한 그들은 그들의 예배가 순수하기 때문에 '신부'라 불린다.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어떤 경쟁자도 하락지 않으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우상숭배를 간음이라고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성경은 사악하고 타락한 교황권을 "음녀의 어미"(계 17:5)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한 가지 그들의 행위, 즉 간음하는 세상과의 친분이나 교제를 단절하고 그리스도께 속한 것 때문에 그들은 '신부'라 불린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 14:4).

특히 성도들은 신랑을 맞기 위해 나아가야 한다. "시온의 여자들아 나와서 솔로몬 왕을 보라 혼인날 마음이 기쁠 때에 그 모친의 씌운 면류관이 그 머리에 있구나"(아 3:11). 이 말씀은 아주 재미있고 복된 말씀으로 우리가 의지해야 할 말씀이다. 여기 나오는 사람은 원형(原型)적인 솔로몬, 평화의 왕을 가리킨다.

그의 '어머니'는 솔로몬을 낳아준 이스라엘로서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해 수고하는(갈 4:19) 영적인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그 마음이 기쁜 날'이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거룩한 언약을 맺은 때(렘 2:2; 출 24:3-8에 그 역사적인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로서 장차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에시하고 있으며 "자신을 주께 드리는"(고후 8:5)날, "주께 연합된 날"(고후 6:17)을 가리킨다.

우리는 그날 그분을 우리 마음과 우리 생애의 왕으로 추대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시온의 여자들"은(그들은 '처녀'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그 영광의 왕을 '보아야'히는 것이다. 그분의 뛰어나심을 자세히 상고해야 하며, 그의 완전하심에 자기를 드려야 하며, '사랑스럽기만 한' 그분을 존경하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여자들 편에서의 능동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느릿느릿 그 모습을 드러내실 분이 아니시다.(아 3:1)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