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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Hakkore
챨스 스펄젼은 계시록 2:4에 대해 설교할 때, 처음 사랑을 저버리면 두려운 일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내가 도대체 하나님의 자녀란 말입니까? 오 하나님, 제가 이런 질문을 해야만 합니까? 예, 제가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우리와 관계가 없으니 상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우리의 경우가 아닙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말씀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질문을 하겠습니다. 내가 어떤 설교를 듣고 감명을 받지 못했으며, 감명을 받았다면 단지 세속적인 자극에 의해서가 아닙니까? 내가 회개했다고 생각하지만 참으로 회개하지 않은 것 아닙니까? 어딘가에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의 실상은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어린 양에게 연합시키는 사랑의 믿음을 갖고..
본장 초반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중생한 자들의 영적인 생명에 국한시켜 설명했었지만, 여기서부터는 그 범위를 확대시켜 영혼에 역사하는 믿음의 단계에 관해 다루고자 한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영적인 타락 - 타락의 성격, 타락의 원인, 타락의 간교함, 타락의 징후 -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이제 여기에서는 '타락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라고 물어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여기서 일반적인 해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타락은 경우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 이것은 보다 적게 어떤 경우에는 보다 많게, 어떤 경우에는 다른 경우에 비해 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와같이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타락이 드러날 때 - 이것이 그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를 지켜보던 자들에..
성장의 회복 1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좀 더 많이 나열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 부분이 본래 어렵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사건의 다양성 때문이며 그래서 이 부분은 개별적으로 주의깊게 다룰 필요가 있다. 어떤 육체적 질병은 즉시 손을 쓰면 비교적 치료가 용이하지만, 또 어떤 질병은 보다 철저한 주의와 치료가 있어야만 한다. 어떤 의사가 처방을 내릴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사소한 질병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치료를 이유없이 지연시키므로 상태는 악화되어 생명에 지장을 받는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모든 반점이 다 문둥병이 아니라는 점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어떤 반점들은 조그만한 기미가 생길 때,..
마음에 영적인 타락에 대한 징후(2) 4) 마음의 나태함과 이완됨 하나님 앞에서 활동하고 그와의 교제함이 정욕으로 대체될 때 슬픈 현상이 일어난다. 영적인 무감각함이 자연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동일하다. 우리의 오감이 선악을 식별하는 데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온전히 들어야 할 바를 듣지 못하고 보아야 할 바를 보지 못한다. 또한 우리는 영적인 대상에 의해서도 감동을 받거나 영향을 받지도 못할 것이다. 이러한 상태가 계속될 때 영적인 의무는 무시되고 기계적으로, 지식적으로만 수행될 뿐이다. 영적인 의무가 사랑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습관이나 양심에서 나와 수행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도, 우리 자신에게 유익한 것도 아니다. 외부적인 행사가 수행된다 해도 거기에 정신이 결핍되어 있..
한편 하나님께 멀어지는 모든 것들을 단순히 불완전에 기인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들은 중생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내재해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슬픈 것은 작가나 독자 누구를 막론하고 자신의 '반점'이 단지 '하나님 자녀들의 반점'일 뿐이라고(신 32:5)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미덕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다. 우리가 어떤 단점들을 부인하지는 않을지라도 이것들을 가볍게 넘기거나, 어떤 죄에 대해서 마치 록히 소알(Zoar)에 대해 "이것은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어떤 자에게 모욕을 줄 때 "우리가 그대에게 뭘 그렇게 무시했다고 생각하느냐?"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자기를 의롭다 하는 심보는 가장 좋지 못한 마음상태를 말해 주며 이는 계..
우리의 사랑이 식어짐은 아주 불필요한 것이며 통탄할 만한 일이다. 이것을 실증시키기 위해 시도한다는 것은 질책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한때 너무 영적이었다든지 너무 부드러운 양심을 소유하고 있었다든지 너무 하나님께 헌신하였다든지 하고 논란한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그리스도로 채워졌다든지 그를 기쁘시게 하는 데 너무 지나치게 몰두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좀더 실제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발견하지 못하며, 우리가 찾았던 지혜의 길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에 추구했던 것에 되돌아 감으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는 애초에 우리의 노장 선배님들의 조소- 우리의 열정이 곧 식어지고 다시 그것에..
우리는 여태까지 영적인 타락의 성격에 대해 생각해 보았으며 그것의 주요한 원인에 대해 지적해 보았다. 그러므로 죄의 잠행성(潛行性)에 대해서는 몇 마디만 언급하고자 한다. 죄는 영적인 질병이다(시 103:3) 여러 가지 점에서 우리가 그것을 의식하기도 전에 살짝 들어와 우리의 건강을 해친다. 우리는 '죄의 속이는 것'(히 3:15)에 대해 언제나 방심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것이 최초로 역사할 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으면 그것은 곧 이내 우리를 주관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권고받는다. "그러므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수 23:11). 모든 영적인 쇠퇴는 그를 사랑하는 우리의 사랑이 약화된 데 기인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에 속한 것이다. 토질이 좋지 못한..
어린 신자들이여, 당신들은 가장 가깝게 사귀고 있는 친구들이 당신에게 선한 일에든 악한 일에든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은 세속적인 신앙심으로 친구를 사귐으로 그분을 격노케 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와는 떨어진 길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음을 알아야 한다. "방앗간에 사는 자에게는 옷에 밀가루가 묻을 것이다. 향수집에 살면서 그것을 다루는 자에게는 향수가 몸에 베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경건한 친구와 사귀면 우리도 그와같이 될 것이다"(어떤 청교도). "현명한 자와 함께 행하는 자는 현명하게 될 것이라"(잠 13:20). 가장 가까운 친구를 선택함에 있어서 매력적인 인간성에 현혹되지 말라. 거기에는 양의 옷을 입은 이리가 득실거린다. 더우기 조심해야 할 일은 당신으로 타인에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