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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01]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01]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6. 21:28

성장의 회복 1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좀 더 많이 나열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것은 이 부분이 본래 어렵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대두되는 사건의 다양성 때문이며 그래서 이 부분은 개별적으로 주의깊게 다룰 필요가 있다.

어떤 육체적 질병은 즉시 손을 쓰면 비교적 치료가 용이하지만, 또 어떤 질병은 보다 철저한 주의와 치료가 있어야만 한다. 어떤 의사가 처방을 내릴 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사소한 질병이라고 가볍게 여기고 치료를 이유없이 지연시키므로 상태는 악화되어 생명에 지장을 받는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모든 반점이 다 문둥병이 아니라는 점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어떤 반점들은 조그만한 기미가 생길 때, 이 환자를 제사장에게 데려가 검사를 받게 하고 다른 사람들과 격리시켜 계속 관찰하게 한다. 제사장이 관찰하여 그 병이 어떻게 되었는가에 따라, 즉 그 반점이 악화되어 더 넓게 퍼졌는가에 따라 여부를 결정짓는다.(레 13:4-8)

만약 어떤 그리스도인에게 심령의 '회복'이 필요없는, 항상 영적으로 강건하고 활성적인 경우가 게속된다고 한다면, 이는 매우 의아스러운 일일 것이다. 신자라면, '주의 말씀을 따라 나를 소성케 하소서'라고 부르짖을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 가능한 일이겠는가?(시 119:25)

그러나 여기서 성급하게 결론짖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성도가 영적인 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반드시 타락을 맛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인생은 영고성쇠, 타락과 회복, 쇠퇴와 복귀가 반드시 있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체험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주신 법도가 아니다. 수많은 약국이나 병원들은 경고를 보여주지만, 이것들로 인해 머지않아 병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증명해 주지는 못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거룩하고 강건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어 놓으셨다.

내가 그것들을 누리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예비내 놓으신 것들을 경시하지 않았나 각성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나온 여러 장들에서 논의한 바가 있기 때문에, 다시 한 번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상기시킨다는 것은 별로 필요치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즉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리스도의 충만함 가운데서 받아 누리며 말씀을 규칙적으로 받아 먹지 않는다면, 그의 영적인 생활의 맥박은 조만간 불규칙적으로 힘을 잃어갈 것이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면서 그리스도의 비하와 고난을 그의 마음 가운데 새롭게 하고 은혜의 보좌앞에 자주 드나들지 아니하면 신령한 것들에 대한 구미은 더 이상 당기지 아니하고 순종한다는 것이 아예 지겹고 불쾌하기까지 생각될 것이다.

이렇게 약화된 것들을 무시하거나 변명한다면, 멀지 않은 장래 그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세속적이고 육정적인 것이 그에게 들어와, 이제는 세상적인 것들이 매력을 끌고 그것들을 열렬히 추구하고 거기에 대한 관심이 가중된다. 그때 하나님께 되돌아와 그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지 아니하면, 멀지 않은 장래에 공공연히 죄짓는 일을 서슴지 않게 될 것이다.

타락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의 경우에 타락은 항상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질 때 일어난다.♡ 그것이 조금 시간이 지나면 곧 매일의 생활 가운데 명백한 증거를 갖고 나타날 것이다. 신자가 일단 외부적으로 타락하면 그의 구별된 성품은 빛을 잃는다.

세상과의 구별된 것들이 와해되기 때문이다. 타락은 언제나 믿음의 공언과 그리스도께 충성을 전제로 한다. 비록 거기에 공언한 것들의 실체가 반드시 수반되지 않을지라도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불신자의 공언은 비록 거짓되지만 진지해 보일 수도, 그리고 끝까지 그 공언에 충실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얼마 안가서 그는 그것에 싫증을 느끼고 무슨 진귀한 것이 사라지면 공언한 것들을 파기한다.

이것은 아마 돼지가 다시 수렁에 뒹구는 것과 같은 것일 것이다. 이런 자는 변절자이다. 이것은 매우 희귀한 예이지만 이런 변절자는 그야말로 완전하고 최종적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