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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02]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02]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6. 21:28

본장 초반부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중생한 자들의 영적인 생명에 국한시켜 설명했었지만, 여기서부터는 그 범위를 확대시켜 영혼에 역사하는 믿음의 단계에 관해 다루고자 한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영적인 타락 - 타락의 성격, 타락의 원인, 타락의 간교함, 타락의 징후 -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이제 여기에서는 '타락의 결과는 어떤 것일까' 라고 물어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여기서 일반적인 해답은 주어지지 않는다.

타락은 경우에 따라 상당히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 이것은 보다 적게 어떤 경우에는 보다 많게, 어떤 경우에는 다른 경우에 비해 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와같이 결과는 언제나 동일하지 않다. 그리스도인의 타락이 드러날 때 - 이것이 그 자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를 지켜보던 자들에 의해서 발견될 때 - 그는 '타락자의 반열'에 들어간다.

이것은 그의 안에 신령한 것들을 역사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 부분을 보다 확대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중생치 못한 공언자들은 그들의 신앙생활이 악화되어도 거기에서 그럴듯한 위안을 끄집어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안은 사단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즐겨 사용하는 용어이다.

영적인 타락을 잘 포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정지하여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악화된다.♡ 이것이 더욱 악화될수록 우리는 '영적인 타락'에 해당하는 것들을 생각함으로 옳다 인정함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성경은 이것이 우리에게 무가치한 공언임을 밝히 드러내 보여준다.

그러므로 영적인 타락의 정도가 자기 만족에 겨워하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보다 심각한 그 무엇이며 즉시 시정되지 않으면 대단히 위험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리스도인에게 설득하여 이르기를, 열정이 다소 감소하고 영적인 사랑이 좀 싸늘해지더라도 걱정할 바가 못된다는 것이다.

비록 그의 건강이 쇠퇴하기 시작해도 큰 죄에 떨어지지 아니하면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쇠퇴에는 위험이 따른다. 특별히 마음으로 변명하거나 이유를 내세워 정당화시키려 할 때 그 위험은 더하다. 죄의 성격과 치명성은 그것이 불신자에게서든지 신자에게서든지를 막론하고, 그 자체에 이미 동일한 속성을 갖고 있다.

그것을 거부하거나 죽여버리지 않더라도, 그것을 회개하거나 떨쳐 버리지 않더라도 그 결과는 동일하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약 1:15,16)

영적인 타락의 세 단계가 계시록 2장과 3장에서 진지하게 표현되어 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교회의 타락에 대해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4)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은 말씀은 앞서 주님께서 "네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더욱 파격적이고 연구해 봄직하다.

주님은 여기에 부가하여 말씀하시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경우는 외부적으로 화려하고 만사가 다 잘 될지라도 내적으로 썩어들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라고 한 이 하나님의 문책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의 상태에 대해 책임이 있음을 암시해 준다.♡ 어떤 사람은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롬 5:5)는 말씀을 끌어와 여기에 대해 개인적인 책임을 회피한다.

그들의 마음이 냉랭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로서, 전혀 비난받을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큰 오산이다. 그들은 명예훼손에 모욕을 더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뜨겁게 지속하는 것과 믿음을 규칙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성도의 진정한 의무이며, 후자에서 보다 전자에 실패하면 이는 변명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분명히 이러한 명령이 주어져 있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라"(유 21절). "위엣 것에 마음을 두라"(골 3:1). 내가 나의 행하지 않음을 하나님의 주권에 돌린다면, 진리를 곡해하고 남용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너를 책망하노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은 행하지 않음에 대한 책망의 말씀이다.

확실히 그리스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책망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는 단순히 "처음 사랑을 버렸구나" 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잘못 인용하여 그 의미를 한층 떨어뜨린다.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이 말은 무언가 더 의미심장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사람은 일을 무의식 중에 '잊어버릴' 수가 있지만, '떠난다'는 것은 심각하게 생각하고 난 후에 행동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주님이 고려하신 것, 즉 이 떠남이 단순한 어떤 결점이 아니라 심각한 죄임을 드러내 준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자. 그는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