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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98] 영적인 쇠퇴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98] 영적인 쇠퇴

En Hakkore 2024. 4. 6. 21:26

우리의 사랑이 식어짐은 아주 불필요한 것이며 통탄할 만한 일이다. 이것을 실증시키기 위해 시도한다는 것은 질책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한때 너무 영적이었다든지 너무 부드러운 양심을 소유하고 있었다든지 너무 하나님께 헌신하였다든지 하고 논란한다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그리스도로 채워졌다든지 그를 기쁘시게 하는 데 너무 지나치게 몰두했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좀더 실제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의 만족을 발견하지 못하며, 우리가 찾았던 지혜의 길에서 평강과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전에 추구했던 것에 되돌아 감으로 행복을 누린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보아 우리는 애초에 우리의 노장 선배님들의 조소- 우리의 열정이 곧 식어지고 다시 그것에로 복귀한다는 것 -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배반자들에 대하여 하나님은 다음과같이 말씀하신다.

"이르시기를 내 백성아 내가 무엇을 네게 행하였으며 무엇에 너를 괴롭게 하셨느냐 너는 내게 증거하라."(미 6:3)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처음 사랑에서 떠난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된다. 그들은 이것의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금방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마치 어리석은 삼손과 같아서 모든 시험을 우습게 여기다가 여호와를 진노케 한다.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여도 여호와께서 자기를 버리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 16:20). 죄에 굴복함으로 심판을 무디게 하며, 성령이 슬퍼하시고, 하나님의 복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친구들은 우리에 대해 그것을 깨닫고 느끼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경우에 대하여 그것을 묘사해 놓은 엄중한 말씀이 있다.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호 7:9).

"백발이 얼룩얼룩하다"는 말은 우리의 상태가 타락하였고 멸종위기에 있음을 예시해 주는 징후이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인의 영적인 타락을 말해 주는 어떤 징후가 있지만, 보통 그는 이러한 징후들을 망각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영적인 타락의 몇 가지 징후들에 관심을 돌려 보고자 한다. 죄가 기만적으로 역사하고 있고 그리스도인은 이것이 타락의 시초인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이 징후들을 보다 자세히 묘사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자연적인 것이 영적인 것을 흐리게 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거기에 적당한 주의를 기울이면 매우 유익한 것들을 얻을 것이다. 변비증은 변칙적인 식사할 때 생긴다. 죄가 영혼에 들러 붙으면 그것은 우리가 육체 죽이는 일을 무시하기 때문이며 '쓴 나물'(출 12:8)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식욕을 잃고, 안색이 창백하고, 눈이 침침하고 정력이 없어지면 육체가 편치 못하다는 증거이다. 이것들을 곧 바로 고치지 않으면 심한 병에 걸리고 만다. 이 모든 것들은 영적인 대칭요소들을 갖고 있다. 초조하고 안달하며 잠을 못 이루면 신경과민에 걸릴 징조이다.

영적인 대등한 것들은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시 116:7). 문둥병의 경우에 주님께서는 이들 병자들을 세심히 살펴보고 그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점검하고 여기에 따라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영적인 질병은 육체적인 질병보다 훨씬 더 가증스럽고 위험하며 이것에 대한 진정한 판단을 행한다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반점이 있다고 문둥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불완전함이 그의 영적인 타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도 바울도 그의 내적인 부패로 인해 신음하였으며, 그가 이미 얻은 것도 아직 완전에 득달한 것도 아니라고 고백했다. 그는 다만 위에서 부르는 부름의 상을 향하여 좇아가노라고 말했다.

이러한 정직한 고백은 그가 타락하였음을 자인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 악한 불신앙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과도 거리가 멀다. 우리는 한편에서 어둠을 빛이라고 함으로 스스로를 변명하거나, 다른 편에서 빛을 어둠이라고 함으로 우리 자신을 불필요하게 혹평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필요로 한다.

확실히 전자가 후자보다 더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 아마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에 대해서 부당하게 혹평하며 잘못된 결론을 내린다. 그들이 사실보다 더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그들은 좋은 시절 약혼 때에 가졌던 그것과 동일한 열정과 애정이 없다고 슬퍼한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들의 자연성은 변화하매, 육체의 힘은 경감할 것이고, 정신 기능도 둔탁해질 것이다. 하지만 보다 뜨겁고 열열한 열정은 부족하다 할지라도 그들 가운데 있는 길이나 안정성은 더할 것이다.

현세에 연관된 많은것들이 이르테면 청년의 때에 흘리던 눈물들은 그들이 보다 성숙해짐에 따라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보다 장엄한 정신세계를 구가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 때의 흥분과 명랑함이 없다고 이것을 영적인 타락이나 냉랭함에 비유한다는 것은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