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01 (15)
En Hakkore
1. 영적인 성장은 영적인 지식을 증가시킴으로 가능하게 된다.(3)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중생자와 비중생자를 구별짓는다. 바울은 그의 회심자들이 이 지식을 얻게 되도록 간구했으며, 이것은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 성장과정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 지식은 하나님에 대한 어떤 사색적인 견해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보다는 오히려 훨씬 위이다. 그것은 초자연적이며 구원하는 지식이다. 하나님에 관한 단순한 이론적 지식은 무능하고 비효과적이나, 그를 경험적으로 생생하게 체험하듯 안다는 것은 역동적이고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그것은 마음에 깊이 작용하여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지식이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니라"(잠 9:10).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은혜를 강화시키는 지식이다. 그것은 그것들을 생생하게..
1. 영적인 성장은 영적인 지식을 증가시킴으로 가능하게 된다.(2)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영적인 지식에서 시작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여기에 대해 우리는 다시 한 번 피어스의 탁월한 부분을 인용하겠다. "나는 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기능, 품위, 습관 성향이 그들의 고유한 객체나 주체에 분명히 초자연적으로 역사할 때 이것이 바로 '은혜 안에서의 자라남'이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말은 설명하는 말이다.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그는 모든 은혜를 작용하게 하시는 주체이시다. 그를 아는 지식에서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자라남이 '은혜 안에서의 자라남'이다. 이로써 우리의 모든 은혜는 생기를 얻고 힘을 얻어 활동..
우리는 이제까지 영적인 성장의 원리와 그리스도인의 성장과정에 요구되는 몇 가지 주안점을, 그리고 영적인 성장이란 중생시 부여된 영적인 생명의 발전과정이라는 점을 지적해 왔다. 이제 우리는 그것의 발전과정이 실제로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를 세목을 들어 특수한 면에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영적인 성장은 영적인 지식을 증가시킴으로 가능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성적 피조물인 우리에게 지적인 성향을 따라 역사하신다. 지식이 예비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우리 안에 역사하지 못한다. 우리가 어떤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어떤 도구나 기계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것을 사용할 수 없으며, 악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연주할 수 없다. 영적인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
이제까지 지적했던 말들을 요약해 보면 중생은 '새롭게 함'과 '새로운 창조'를 말한다. '새롭게 함'은 고린도후서 4:16에서 분명히 명시한 대로 계속적인 과정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살리시는 행위로써, 이미 존재하고 있는 실체나 기능(여기에 생기와 활동이 요구된다)을 전제하고 난 후의 행위이다. 이 '새롭게 함'은 속사람의 영과 혼, 혹은 마음과 생각에 관여한다. 이것은 최초의 급진적인 행위이며 그후에 반복해서 그러나 깨달을 수 없는 방법으로 계속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 존재의 고상하고 비물질적인 지체가 원기를 얻고 품위를 갖춘다. 이것은 '육체'나 우리 안에 역사하는 악의 원리가 발전함을 의미하지 않고 우리의 기능이 영성화 됨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여 영적인 성장이 점점 왕성하게 되며, 위에 있는 것..
위의 지적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혹 이해하기 어렵거나 새로운 것으로 들릴지 모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역사하시며 그의 뜻대로 살아야 할 방법에 대해서 분명히 나타나셨다고 본다. 육체는 혼의 지배를 받아 살며 그것의 부차적인 위치에 있다. 혼은 영에게 종속되며, 영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깨우침을 받으며 통제받는다. 만약 육체가 혼의 지배를 받지 많으면 사람은 동물과 같은 위치로 내려간다. 만약 그리스도인의 감정이 영으로부터 온 지혜로 지배받지 않으면, 그는 중생하지 못한 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이것은 당신의 관심을 영에 두라는 말이다. 이렇게 되면 보다 저급한 것들은 자동적으로 종속적인 위치에 서게..
추리를 함에 있어서 가장 안전한 방법은 일반적인 데서 특수한 데로 나아가는 방법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성장에 대한 세부사항을 분석하기 전에, 영적 성장의 원리에 있어서 중요한 지침을 보여 주려고 한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그리고 '그의 율법은 심히 넓기'(시 119:96) 때문에, 선지자로 말미암은 해석을 필요로 했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로 말미암은 더 많은 주석과 해석을 필요로 했다. 영적인 성장은 영적인 생명의 발전과정이며 영적인 생명은 중생시에 죄인에게 주입된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는 중생의 성격을 보다 명백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중생은 상당히 신비적이지만 거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요소가 우리에게 도움을 준다. 그것은 '새롭게 하는 것'(딛 3:5)..
7. 슬픔의 감정 이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을 영적인 성장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심심치 않게 있다. 그들은 이러한 확신을 주제넘은 것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기쁨이 경솔한 것은 아니지만 좀 가벼운 것으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배워왔다. 만약 그들인 '믿음의 확신 가운데' 잠시 동안 기쁨의 순간을 맛보게 되면, 그것을 곧 사탄이 주는 것이라고 두려워한다. 그들의 마음은 대부분 그리스도보다는 죄로써 채워져 있다.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으며 의심하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심연의 깊은 곳을 유일한 도피처로 삼고 있으며, 가장 비참할 때가 가장 행복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어떤 괴팍한 신앙적인 형태가 슬프게도 이러한 사실을 만들..
4. 기도의 시간 우리는 여기에서 오해하지 않기 위하여 자연적인 기도와 영적인 기도를 구분해야 하겠다. 어떤 사람은 본래 열성적이어서 종교적인 활동들을 좋아하며, 또 어떤 사람들은 음악이나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지 않는 완전한 문외한들일 수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조용한 시간'을 갖기 위해 하루 중 어떤 부분을 정해 놓고 또 그들의 팔 길이만큼이나 긴 기도와 목록을 갖고 있지만, 은혜와 간구의 영은 조금도 없다.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길고 장황하게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모하멧 교도들은 '기도하는 돗자리'를 갖고 있다. 불교도들에게는 '기도하는 수레바퀴'가 있다. 카톨릭 교도들에게는 '묵주'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위의 예와 마찬가지로 원죄에서 나왔다. 은혜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