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3 (465)
En Hakkore
애처로운 기도 도대체 다윗은 이 시기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그가 자기 아들의 배반에 대해 완전히 몰랐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패위하려는 반역의 음모가 진행중이라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압살롬의 계획을 지지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했다는 암시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그의 무관심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앞 장 말미에서 우리는 다윗의 파란만장한 생애 중, 이 시기 동안 그가 취했던 이상한 수동성에 대해 고찰하면서 알렉산더 맥라렌(Alexander Maclaren)이 제시한 설명이 성경을 통해 적절하고 분명하게 확증되는 것을 살펴보았다. 이 시기 동안 다윗은 심각하고도 오랜 병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맥라렌은 가장 뛰어난 주석가들..
압살롬의 육체적 매력 이제 다시 본문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자.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압살롬이 훔치니라." 확실히 이 구절은 우리의 마음을 향해 큰소리로 말을 걸어온다. 압살롬이 설득했던 대상은 공공연하게 다윗에게 반항했던 적들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이었다. 그가 꼬드겨서 자기편으로 만들었던 대상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었다. 압살롬은 그들의 마음에 불만의 씨앗을 뿌리고, 다윗에 대한 그들의 애정을 자기에게로 돌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왕에게 불충성하도록 만들었다.😰 아, 이것이 주는 교훈은 명백하지 않은가? 그리스도의 백성들을 유혹하고자 하는 자가 있지 않은가? 그는 그 백성들이 자신을 섬기게 함으로써 그분의 통치에 대한 충성을 포기하고 반역하도록 유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그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호위병 오십 명을 그 앞에 세우니라"(삼하 15:1). 여기에서 "그 후"는 다윗이 형제를 죽인 아들을 다시 받아들인 이후를 가리킨다. 만약 압살롬이 그 관대한 아버지에게 조금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그 아버지를 위해 일했을 것이다. 아, 그러나 그는 자기 아버지의 왕권을 강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폐위시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압삽롬은 이제 그런 일을 전개할 만한 위치에 있었다. 우리는 그가 취한 방법을 통해 그가 얼마나 사악하고 염치없는 악당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우리의 본문이 그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 첫 번째 내용은 그가 하나님을 철저히 경멸했다는 것 그리고 이방인이나 다름없이 행동했다는 것..
다윗의 수동성 이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동안, 다윗은 이상할 정도로 수동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그가 반역한 압살롬을 피해 달아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의식 때문에 완전히 마비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암논을 벌하려 하지 않았고, 압살롬이 저지른 일을 듣고서는 울기만 했다. 그는 드러내지도 못한 채 압살롬이 돌아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압이 그것을 촉구하기 전까지는 사람을 시켜 그를 부르러 보내지도 못했다. 그가 자기 아들을 보기를 거절했을 때 그의 왕다운 품위가 잠시 드러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조차 요압이 압살롬을 왕궁으로 불러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그 자신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고, 단지 그의 강력한..
방자한 도전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삼하 14:28-29). 곧 이어서 벌어진 일에 비추어 볼 때, 압살롬이 자신이 구금 상태(그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불렀던 것"은 당시 그가 실제로 그의 집에 감금된 죄수의 신분이었음을 보여 준다)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가 그가 악한 계획을 진행하는 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왕과 화해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유를 얻고, 또 그로 인해 나라를 자신의 손에 넣을 기회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요압이 그를 찾..
압살롬의 귀환과 감금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 14:23-24). 앞에서 우리는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는 구절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라는 구절을 읽었다(삼하 13:37, 29). 그런데 정작 그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다윗은 그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명령했다. 인간은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 그는 자신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하고 어떤 타협이라도 한다! 어쩌면 다윗 곁에 있던 보다 경건한 몇몇 사람들이 왕이 그런 식으로 율법을 어기는 것에 ..
다윗이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라고 명령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여러분 중 어떤 이들은 이것을 성급한 판단으로 여기고 다음과 같이 말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著者)에게는 자식이 없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에게 자식이 있다면,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좀더 잘 이해했을 것이다. 다윗은 그의 엇나가는 아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그렇게 한 것 아니겠는가? 확실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생래적 애정조차 없는 자들이 되기를 원치 않으실 것이다." 아, 사랑하는이여, 주님의 요구는 드높고 포괄적일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인정하고 싶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다. 우리는 그것들이 우리가 좁은 길을 걷는 것을 방해할 경우 우리의 오른쪽 눈을 빼버리고..
요압의 계책 사무엘하 14장은 압살롬이 어떻게 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알려준다. 그 일의 주모자는 요압이었다. 그는 오늘날의 용어로 말한다면 "약삭빠른 정치인," 즉 무원칙하고 교활한 기회주의자로 불릴 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이었고 왕과 그의 확실한 후계자 모두에게 알랑거리고 싶어 했다. 그는 다윗이 압살롬을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알았고, 따라서 왕은 자신이 압살롬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기 위해 제안하는 어떤 방법이라도 승인할 것이며, 그로 인해 왕실에서 자신의 지위가 공고해질 것이라고 추론했다. 문제는 어떻게 자비가 심판을 이기게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방법 역시 알고 있었다. 요압은 몇몇 경건한 자들이 율법의 위반에 대해 반대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