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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13] 압살롬3(사무엘하 1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13] 압살롬3(사무엘하 14장)

En Hakkore 2024. 3. 1. 11:35

방자한 도전

"압살롬이 이태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압살롬이 요압을 왕께 보내려 하여 압살롬이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부르되 그에게 오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에게 보내되 오지 아니하는지라"(삼하 14:28-29).

곧 이어서 벌어진 일에 비추어 볼 때, 압살롬이 자신이 구금 상태(그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 불렀던 것"은 당시 그가 실제로 그의 집에 감금된 죄수의 신분이었음을 보여 준다)를 견디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런 상태가 그가 악한 계획을 진행하는 것을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왕과 화해하기를 원했던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유를 얻고, 또 그로 인해 나라를 자신의 손에 넣을 기회를 얻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요압이 그를 찾아가기를 망설였던 이유일 것이다. 그는 압살롬의 불충한 계획을 짐작했고, 그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알았을 것이다.

"압살롬이 자기의 종들에게 이르되 보라 요압의 밭이 내 밭 근처에 있고 거기 보리가 있으니 불을 지르라 하니라 압살롬의 종들이 그 밭에 불을 질렀더니"(삼하 14:31).

그는 여전히 자기 뜻을 고집하는 인물이었다.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시 12:4)라는 말이야말로 그의 모든 행위를 설명해 준다. 그는 그술에서 3년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감금된 채 2년의 세월을 보내고서도 전혀 변화되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낮아지지 않았고, 그의 오만한 성질은 죽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명이 보존된 것을 감사히기는커녕 자기가 왕궁에 출입하지 못하는 것을 매우 부당한 일로 여겼다. 그는 요압이 자기를 그술에서 돌아오게 해 준 것에 감사하기는커녕 이제 그가 자신을 보러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에게 비열한 복수를 행했다.🥺

그런 행위는 다른 이들에게 거부되는 것을 조금도 견디지 못하는 그런 방자함을 드러내 보였다. 폭력적인 사람은 자기가 정한 길을 가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한다. 압살롬에게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또한 자기 이웃에 대한 존중도 없었다.

"요압이 일어나 압살롬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 종들이 내 밭에 불을 질렀느냐 하니"(삼하 14:31).

얼핏 보면 압살롬을 찾아가는 일을 두 번씩이나 거절했던 그가 모욕과 손해를 입은 후 그의 요청을 들어 주고 그가 왕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주선한 것은 이상하게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분명해진다.

요압은 노련한 정치인이었고 백성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그는 압살롬이 그 백성들에게 크게 호감을 얻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삼하 14:25). 그리고 이제 그는 압살롬의 분노와 힘에 대한 추가적인 증거를 갖고 있었다. 그의 종들이 감히 이스라엘의 군대장관의 밭에 불을 지르라는 그의 명령을 기꺼이 따랐던 것이다!

요압은 더는 그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두려웠다. 그리고 아마도 미래를 내다보면서 그의 마음에 들고자 하는 마음 역시 품었을 것이다.

"압살롬이 요압에게 대답하되 내가 일찍이 사람을 보게 보내 너를 이리로 오라고 청한 것은 내가 너를 왕께 보내 아뢰게 하기를 어찌하여 내가 그술에서 돌아오게 되었나이까 이 때까지 거기에 있는 것이 내게 나았으리이다 하려 함이로라 이제는 네가 나로 하여금 왕의 얼굴을 볼 수 있게 하라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하는지라"(삼하 14:32).

압살롬이 한 나라의 왕이기도 한 자기 아버지에 대한 이런 태도를 취한 것은 얼마나 오만하고 무례한 짓인가! 이것은 가장 조악한 배은망덕이고, 왕권에 대한 조롱이고, 법을 행사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교묘한 도전이이었다.

이에 대해 매튜 헨리가 옳게 지적했다.

"그의 메시지는 오만하고 도도했으며, 아들로서 혹은 신하로서 전하기에 적합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기의 아버지가 자신을 추방 상태에서 불러들여 다시 자기 집에서 살게 하면서 보여 준 은혜를 가볍게 여겼다. 그는 자신이 지은 죄를-그것이 매우 악한 것이었음에도-부인했다. 또한 그는 넌지시 자신이 받는 징계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면서 자기가 악한 일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악의 처벌에 대해 반항했다. '내가 만일 죄가 있으면 왕이 나를 죽이시는 것이 옳으니라.'

"요압이 왕께 나아가서 그에게 아뢰매 왕이 압살롬을 부르니 그가 왕께 나아가 그 앞에서 얼굴을 땅에 대어 그에게 절하매 왕이 압살롬과 입을 맞추니라"(삼하 14:33).

아, 다윗은 그 모욕적인 무례함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에게 굴복했다. 그의 좋은 판단력은 아들에 대한 과도한 애정 때문에 흐려지고 말았다.🥺

다윗은 압살롬을 왕궁으로 맞아들였다. 왕 앞에 부복한 압살롬은 그의 권위에 순종하는 체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왕위를 탈취하려는 비열한 계획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윗은 압살롬에게 율법을 집행하는 대신 입맞춤을 통해 그에 대한 자신의 용서를 확인해 주었다. 어떤 이가 잘 말했듯이 "다윗의 부적절한 부드러움은 압살롬의 뻔뻔한 반역을 위한 길을 닦았을 뿐이다. 이것은 무서운 경고다!

악을 부드럽게 대해 보라. 그러면, 분명히 말하지만, 그것은 당신의 머리 위로 올라가 결국 당신을 짓누를 것이다. 다른 한편, 악을 엄하게 다스려 보라. 그러면 당신은 분명히 승리를 거둘 것이다. 뱀과 희롱하지 말고, 그것이 눈에 보이는 즉시 발로 밟아 뭉개라."🤞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