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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12] 압살롬3(사무엘하 14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12] 압살롬3(사무엘하 14장)

En Hakkore 2024. 3. 1. 11:34

압살롬의 귀환과 감금

"요압이 일어나 그술로 가서 압살롬을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오니 왕이 이르되 그를 그의 집으로 물러가게 하여 내 얼굴을 볼 수 없게 하라 하매 압살롬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왕의 얼굴을 보지 못하니라"(삼하 14:23-24).

앞에서 우리는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는 구절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라는 구절을 읽었다(삼하 13:37, 29). 그런데 정작 그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다윗은 그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라고 명령했다.

인간은 얼마나 이상한 존재인가! 그는 자신의 면목을 세우기 위해 어떤 방법이라도 사용하고 어떤 타협이라도 한다! 어쩌면 다윗 곁에 있던 보다 경건한 몇몇 사람들이 왕이 그런 식으로 율법을 어기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고, 그로 인해 그가 자신의 한 일에 대해 불안을 느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윗은 그런 양심의 소리를 누그러뜨리고 다른 이들의 비난을 무마하기 위해 압살롬을 그의 거처에 감금하라고 명령했을 수도 있다.

어떤 작가들은 왕의 이런 조치가 그의 아들을 겸손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즉 다윗은 압살롬이 그의 가증스러운 죄를 깨닫고 그것에 대해 회개하기를 바랐기에 그런 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가 그술에서 보낸 3년의 세월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아니다, 나는 내가 위에서 말한 내용이 훨씬 더 그럴듯한 설명이 되리라고 믿는다. 다윗은 압살롬이 그의 집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함으로써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 또 그는 그가 왕궁에 들어오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에게 정의가 살아 있음을 보여 주었다.

또 그가 그런 금지 명령을 통해 자신이 암논의 살해 사건을 얼마나 혐오하고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최고 치안판사인 그가 하나님의 법을 무시했다는 사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는 자신의 엇나간 자식이 더 큰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놀라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아무도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 받는 자가 없었으니 그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삼하 14:25).

이것은 당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얼마나 낮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 압살롬은 그의 도덕적 가치 때문에 존경을 받았던 것이 아니다. 사실 경건, 지혜, 정의 들을 완전히 결여하고 있었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의 멋진 외모에 홀딱 반했다.

그가 저지른 큰 혐오스러운 악행은 무시되었고, 그의 풍채는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의 오만함을 부추겼고, 결국 그를 파멸에 이르게 했다. 아, 건강한 육체 안에 부패한 마음이 들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의 타락한 세대가 육체적 아름다움과 용맹함을 도덕적 미덕과 영적 은사들보다 훨씬 더 강조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그가 자신의 멋진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후 그 무게를 달아 보았던 것(26절)은 그의 오만함과 여자 같은 성질을 잘 보여준다. 그가 낳은 세 명의 아들들(27절)은 어릴 적에 죽은 것이 분명하다(삼하 18:18 참고).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400

• 사무엘하 18장 18절.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가져 세웠으니 이는 저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없음을 한탄함이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으로 그 비석을 이름하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