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2 (290)
En Hakkore
파멸을 향한 돌진 여기에서 우리가 분명히 알아두어야 할, 그러나 그것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민감한 양심을 지닌 자들이라도 어느 정도 훈련이 필요한 중요한 원리가 들어 있다. 그리스도인이 불신자들로부터 호의를 얻는 것은 어느 정도까지 가능한 것일까? 어떤 것은 그런 호의를 제공하는 자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가에 달려 있다. 어떤 것은 그런 호의를 제공하는 자의 동기가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어떤 것은 제공된 호의의 성격이 무엇인가에 달려 있다. 분명히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제공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 자(가령 정직하지 않은 고용인 같은)가 제공하는 것을 덥썩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정죄하고 있는 것(천박한 옷차림이나 극장표 같은)을 받아서도 안 된다. 또한 그들은 그들을 세상 사람들..
다윗의 동기 여기에서 나는 사무엘하 10장에 기록된 사건이 제시하는 구원의 은총에 대한 사랑스러운 예표적 측면을 서술하는 대신 다윗의 개인적 동기를 살피고 그것이 거듭해서 알려 주는 교훈과 경고에 주목할 것이다.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삼하 10:1-2). 우리가 이 구절들에 내포된 실제적 가르침을 얻기 위해 고찰할 필요가 있는 첫 번째 질문은, "어째서 다윗이 신하들을 보내 암몬 왕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는가"이다. 그를 움직였던 동기는 무엇이었나? 그 질문에 대해 "그의 친절한 마음"..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시 119:96). 갈라디아어역 성경(The Chaldee Paraphrase)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나는 내가 관심을 가졌던 모든 일들의 끝을 보았다. 그러나 주님의 계명들은 매우 크다." 시리아역 성경(The Syriac Version)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읽는다. "나는 모든 종교와 나라들의 끝을 보았다. 그러나 주님의 계명들의 범위는 광대하다" 시편 기자는 "피조물의 일들"과 "창조주의 말씀"을 구별한다. 세상의 일들 중 가장 완벽한 것조차 불완전하다. 최상의 상태에 있는 인간조차 "모두가 허사뿐이다"(시 39:5). 우리는 인간의 일들의 끝과 한계를 즉각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지혜의 가장..
은총을 거부하는 세상 "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삼하 10:3). 이 구절을 굳이 해석할 필요가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다음 요소가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가? 기독교의 복음 전도자들의 공통된 경험은 본질적으로 다윗의 신하들이 겪은 경험과 동일하다. 그들의 의도는 가장 훌륭한 것이었음에도, 사람들은 그들의 의도를 악한 것으로 곡해했다. 그들이 참된 위로의 메시지를 전할지라도, 가련하게 눈이 멀어서 사탄에게 잘 속아넘어가는 자들은 그들을 "흥을 깨는 사람"으로 간주했다. 비록 그들이 접촉하..
죽음, 은혜의 배경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삼하 10:1-2a). 우리는 이 구절의 각각의 세부 사항을 면밀하게 살필 때만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타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어두운 배경을 이루는 것은 죽음이다. 다윗은 나하스의 죽음 때문에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베풀 기회를 얻었다. 일단 우리가 이 점에 분명하게 관심을 갖는다면, 기름 부음을 받은 눈이 그것의 영적 의미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에게는 "위로"가 필요 없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거리낌 없는 교제를 나눴던 짧은 기간 동안 그에게는 복음이 필요..
다윗의 생애와 관련해 기록된 다음의 사건은 한 가지 이상의 관점에서 고찰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 사건이 사무엘상 10장에서는 그가 므비보셋에게 친절을 베푼 직후에 기록된 반면, 역대상 19장에서는 사무엘하 8장과 동일한 내용(다윗이 주변 국가들을 정복하는 이야기들- 역주)에 대한 언급 직후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암시된다. 비록 사무엘하 10장과 역대상 19장의 정황은 다르지만, 그 이야기들은 모두 "그 후에"(삼하 10:1; 대상 19:1)라는 동일한 말로 시작된다. 이 사건이 사무엘하와 역대상에서 거의 동일한 언어로 길게 묘사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이중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며, 또한 이 사건이 서로 다른 정황 속에서 서술된다는 것은 그것이 그 각각의 정황과의 관계에서 별도로 고찰될 필..
은총의 결과 사무엘하 후반부에는 애처롭기도 하고 복되기도 한 이 일의 결과가 기록되어 있다. 간략하게나마 그것에 대해 살피기로 하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앞에 놓인 본문의 사랑스러운 결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첫째, 사무엘하 16장 1-4절에서 우리는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달아났을 때 므비보셋의 종 시바가 다윗의 사람들을 위해 풍성한 음식을 가지고 다윗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때 다윗이 그에게 므비보셋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시바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예루살렘에 있는데 그가 말하기를 이스라엘 족속이 오늘 내 아버지의 나라를 내게 돌리리라 하나이다"(3절). 이것은 성경에 실려 있는 성도들을 위한 여러 가지 경고들 중 하나로 성도는 마땅히 중상과 불친절한 말에 대해 대비해야 한다는 것..
므비보셋이 얻은 것 이제 우리는 므비보셋이 다윗이 베푼 큰 친절을 통해 얼마나 놀라운 "몫"을 얻었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 축복을 입은 자들에게 제공하는 풍성한 은혜의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첫째, 그에게는 "생명"(life)이 주어졌다. 다윗은 그렇게 할 수 있었음에도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다. 므비보셋의 생명이 보존된 것은 다윗이 그에게 베푼 고귀한 관용때문이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를 경멸하고 그분의 법을 어겼기에 가차 없는 심판 외에는 아무것도 받을 것이 없는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복되게 예시한다.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영생"이다.🌱 둘째, 그에게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