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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172] 신하들이 모욕당함(사무엘하 10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172] 신하들이 모욕당함(사무엘하 10장)

En Hakkore 2024. 2. 27. 15:01

죽음, 은혜의 배경

"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삼하 10:1-2a).

우리는 이 구절의 각각의 세부 사항을 면밀하게 살필 때만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타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어두운 배경을 이루는 것은 죽음이다. 다윗은 나하스의 죽음 때문에 그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베풀 기회를 얻었다. 일단 우리가 이 점에 분명하게 관심을 갖는다면, 기름 부음을 받은 눈이 그것의 영적 의미를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타락하기 이전의 인간에게는 "위로"가 필요 없다. 아담이 그의 창조주와 거리낌 없는 교제를 나눴던 짧은 기간 동안 그에게는 복음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죄가 들어오자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아담의 죄는 에덴의 평화로운 장면 위에 검은 장막을 드리웠다. 그 어두움은 복음의 빛(창 3:15)이 뚫고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떤 식으로도 경감되지 않았다. 인간에게 구주가 필요함을 일깨워 준 것은 "죄"였다. 그리고 온 인류는 타락으로 인해 "영적 죽음"에 빠졌고,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을  "좋은 소식"으로 만들어 주었다.

모두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픈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롬 5:20). 그러므로 종종 죄는 하나님 안에 있는 놀라운 은혜를 초래한다.😊

만약 주님께서 인류의 조상이 그분을 배신했을 때 온 인류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셨을지라도, 그것은 결코 부당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다. 그분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않으셨다"(합 3:2).

바로 거기에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첫 번째 요소가 들어 있다. 죽음이 그것에 적합한 배경을 제공한다. 우리가 그것이 예시하는 영적 죽음 때문에 무서워 떨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가 제공하는 놀라운 위로가 얼마나 복된 것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영적 죽음을 초래한 무서운 타락은 여지가 없도록 만들어 놓았다. 우리의 영적 죽음의 특성은 에베소서 4장 18절을 통해 잘 묘사된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심어놓았다(롬 8:7). 그렇다면 어째서 주님은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시는 것인가? 어째서 그분은 빛보다 어두움을, 선보다 악을 그리고 생명보다 죽음을 더 좋아하는 자들에게 관심을 보이시는가? 그분이 우리를 파멸하도록 내버려두셨을지라도, 우리는 항변할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적극적 구원에 대한 예시

"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삼하 10:2a).

여기에 우리의 예표적 설명이 두 번째 요소가 나온다. 이것은 모든 선하고, 부드럽고, 동정적이고, 이타적인 것들을 지으셨을 뿐 아니라, 그분 자신이 "인애가 크신"(욘 4:2) 분을 가리켜 준다.

오, 주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죄 때문에 저주받은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총이었던가! 주님이 몸소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우리를 섬기셨던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총이었던가!

그분이 굶주리고 고통당하고 불행에 빠진 자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보이셨던 것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총이었던가! 그분이 우리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신 것은(마 4:23)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총이었던가!

다윗이 하눈에게 베푼 은총은 그의 후손이자 주님이신 분이 제공하실 무한히 더 큰 은총에 대한 예시였다.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삼하 10:2b).

이것은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세 번째 요소를 드러낸다. 육신을 입고 계셨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 적이 있다.

"주의 성령이 네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 4:18-19).

그분은 승천하신 후에는 그분의 사신과 종들을 통해 이 은혜로운 사역을 계속하고 계신다(고후 5:20; 막 16:20), 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그들의 말을 듣고자 하는 모든 가련한 죄인들을 위한 얼마나 큰 위로의 메시지를 갖고 있는가!

그것은 다가오는 진노를 피할 길을 알려 주고, 죄의 용서를 얻는 방법을 일러 주고, 평화와 기쁨과 영생과 축복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는 메시지다.😊

우리의 예표적 설명의 네 번째 요소는 다음 구절을 통해 제시된다.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삼하 10:2c).

다윗의 신하들은 니느웨로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난색을 표했던 요나와 같지 않았다.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의 경계 밖으로 나아가는 일에 대해 그리고 우상 숭배자들이 사는 곳까지 여행하는 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 그들은 다윗의 후손의 순종적인 종들을 예표한다. 그들의 임무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하는 것이었다(눅 24:47).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2 p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