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2/19 (15)
En Hakkore
이제 이 모든 말들이 왕에게 끼친 결과에 대해 살펴보자. 사울의 한탄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도다 내 아들 다윗아 돌아오라 네가 오늘 내 생명을 귀하게 여겼은즉 내가 다시는 너를 해하려 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 하는지라"(삼상 26:21). 이런 고백은 그 가련한 왕이 이전에 시인했던 것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가 지금도 여전히 자신의 악함에 대한 올바른 의식이나 그로 인한 참된 회개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은 두려워할 만한 일이다. 오히려 이것은 유다가 자책하며 했던 말, 즉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는 말과 아주 비슷하다. 사울의 이 말은 자신의 삶이 실패했음을 너무 늦게 깨달은 사람의 쓰라린 한탄이었다. 그는 자신이 다..
사울을 향한 항변 "사울이 다윗의 음성을 알아 듣고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음성이냐 하는지라"(삼상 26:17a). 왕은 아브넬을 비난하고 있는 자의 음성을 즉시 알아차렸고, 그를 향해 진심어림 우정을 느끼며 말을 건넸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련하게 타락한 인간의 불안전성과 변덕스러움에 대한 또 하나의 예를 보게 된다. 사울은 어제는 다윗의 목숨을 노렸으나, 오늘은 애정을 갖고 그를 향해 말하고 있다! 우리가 그런 피조물을 어떻게 의지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말 3:6)라고 선언하시는 분을 더욱 더 숭배하고 사모해야 마땅하다. "다윗이 이르되 내 주 왕이여 내 음성이니이다 하고"(17b절). 다윗의 이 말은 아주 아름답다. 다윗은 사울의 변덕스럽고 쉽게..
"다윗의 삶에서 그의 인내심이 사울과의 마지막 대면 때보다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 때는 없었다. 사울은 다시 한 번 다윗의 수중에 떨어졌다. 그러나 다윗은 다시 한 번 그 기회를 이용하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하나님이 승인하시지 않은 방법으로 자기를 구해내려고 하지 않았고,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사울의 입술에서 다윗의 탁월함에 대한 인정과 그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B. W. Newton).🤞 앞 장에서 우리는 다윗과 그의 유일한 수행원이 사울 왕의 진영으로 들어가 그의 창과 물병을 손에 넣은 것을 살펴보았다. 목적을 달성한 다윗은 잠에 취한 적들로부터 물러나왔다. 자기가 그들 가운데로 들어갔다 왔음을 보여 주는 아주 분명한 증거물을 손에 ..
신중함과 용기 "사울이 광야 앞 하길라 산 길 가에 진 치니라 다윗이 광야에 있더니 사울이 자기를 따라 광야로 들어옴을 알고 이에 다윗이 정탐군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삼상 26:3-4). "다윗은 도망치지도, 나가서 사울을 맞이하지도 않았다. 당시 그는 사울이 실제로 자기를 죽이기 위해 왔음을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었다! 만약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들이 더 큰 군대가 그를 향해 왔다면, 분명히 그는 자신의 작은 무리로 그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고, 그 싸움의 결과를 하나님께 맡겼을 것이다. 그러나 주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와 더불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Thomas Scott). "다윗이 정탐꾼을 보내어 사울이 과연 이른 줄 알고" 다윗은 큰 무리의 군대가 자기와 자기의 사람들이 숙..
사울의 적의가 되살아나다 "십 사람이 기브아에 와서 사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다윗이 광야 앞 하길라 산에 숨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매"(삼상 26:1) 여러분은 십 사람들이 이전에도 다윗에게 불친절하게 대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23:19). 그렇다면 다윗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 아니었는가! 우리는 그가 이처럼 지각없이 행동하며 위험을 자초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 내가 이 책의 제8장에서 사무엘상 21장 1절을 설명하며 지적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우리가 육체의 정욕에 빠져 그분과 우리의 교제가 깨지면, 우리의 판단력은 흐려지고, 그 결과 우리는 무분별한 행동을 하게 된다. 성경에서 경건함이 종종 "지혜로운 마음"(시 90:12)으로 불리고..
여러분 중에는 내가 이 장에 왜 이런 제목을 붙였는지, 또 이런 제목이 사무엘상 26장의 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의아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런 이들에게 사무엘상 25장 마지막 구절을 신중하게 살펴볼 것을 권한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사무엘상 25장 마지막 구절과 26장 첫 구절의 관계에 주목하지 않아 많은 것을 놓친다. 서로 완전히 성격이 다른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날 때라도, 영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그 둘 사이의 긴밀한 도덕적 관계를 식별하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소중한 교훈들을 얻는다. 바로 여기에 그런 경우가 있다. 얼핏 보면 사울이 다시 다윗을 공격하는 것과 그 전에 다윗이 아내들을 취한 것 사이에는 아무런 논리적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사악한 자의 길은 ..
"한 열흘 후에 여호와께서 나발을 치시매 그가 죽으니라." 나발의 경우는 부주의하고 경솔하고 무모한 죄인에 대한 엄중한 본보기일 뿐 아니라 - 그런 자는 자기 머리위로 하나님의 심판의 칼날이 내려오고 있는 동안에도 육체의 쾌락에 탐닉하다가 하나님에 의해 갑작스럽게 죽는다 - 또한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신실하심, 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는 말씀의 증거를 볼 수 있는 경우이기도 하다. 성도가 부당하게 모욕을 받거나 나쁜 취급을 당할 때 스스로 복수하려는 것은 죄일 뿐 아니라 전혀 불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적당한 때가 되면 하나님이 그를 위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복수하실 것이..
나발의 죽음 "아비가일이 나발에게로 돌아오니 그가 왕의 잔치와 같은 잔치를 그의 집에 배설하고 크게 취하여 마음에 기뻐하므로 아비가일이 밝는 아침까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다가"(삼상 25:36). 이 상황을 떠올려보라. 불과 얼마 전에 나발은 휘하에 수백 명의 사람들을 거느린 채 곤경에 처해 있던 사람을 조악하게 조롱했다. 이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런 모욕은 보복을 초래할 만한 짓이었고, 실제로 그 모욕을 받은 사람은 그렇게 하려고 했다. 다윗은 나발과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들을 죽여 복수하겠다고 맹세했다(22절). 그리고 본문 23절은 이미 그가 그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길을 나섰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그의 아내가 제때에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나발은 목숨을 보존하기 위해 가망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