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2/25 (15)
En Hakkore
이 시편은 여호와께서 옛날 그분의 백성들을 위해 행하신 기이한 역사들, 특히 출애굽과 홍해와 요단 강을 건너게 하신 일을 찬송한다.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가 발휘된 그 영광스러운 역사들은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고, 기쁜 찬송으로 항상 기려야 마땅하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시 114:1-2).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종 노릇하던 집에서 구하셔서 예배와 율법 순종의 임무를 통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을 찬송하게 하셨다. 그 일을 위해서 그는 그들 가운데 "성소"를 세우셨고-먼저는 장막 속에, 그 다음에는 성전 속에,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분의 성육신 하신 아들 그리스도 안에-거기서 그분의..
여러분 중에는 위의 마지막 열두 번째 요점이 다소 무리라 여기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아마도 출애굽기 15장의 이스라엘의 노래를 기억하고서, "요단 강에서 이스라엘이 불렀다는 찬양의 노래가 어디에 나타나느냐"라고 물을 것이다. 그들이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는 별도의 기록은 없다. 그러나 두 이적들을 함께 묶어서 특별한 찬송의 주제로 삼는 실례가 시편 114편에 나타나는데, 이에 대해 주목하고자 한다. 시(詩)의 유익한 점에 대해 사려 깊은 의견을 낼 수 있는 자격 있는 많은 이들이 자유로이 증언하지만, 이 시에서는 신성한 시적 감상이 절정에 이르고 있다. 그 어떠한 인간의 사고로도 그 내용의 장려함을 따라갈 수가 없으며 그것을 뛰어넘을 수는 더더욱 없다. 그 시는 생명이 없는 것들 중 가장 뛰..
그러나 두 사건 사이에 이처럼 차이점들이 있는 만큼, 유사점도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 주의 깊게 관찰해 본 사람이라면 이 점이 성경 전체에서 두루 나타나는 하나의 원리를 잘 보여 준다는 것을 간파한다. 젊은 학도는 특히 이 점을 주의 깊게 새기기를 바란다.🫰 "둘"은 증언의 숫자이다. 주께서 그를 증언하는 일을 위해 사도들을 보내실 때에 둘씩 둘씩 짝지어 보내신 것처럼 말이다. 이 숫자는 율법 아래에서는 증언을 위한 최초의 숫자였다(요 8:17).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맹세로 제시한 증언이 합쳐지면 그것으로 문제가 종결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둘"은 비교와 대조의 숫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홍해의 이적과 요단 강의 이적 등, 동일한 종류에 속하는 이적이 오직 둘만 있을 시에는 뚜렷한..
여호수아의 과거의 신실함에 대한 상급으로, 또한 그의 앞에 닥친 큰 과제를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더욱 철저하게 구비시키시기 위해,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종에게 특별한 존귀를 덧입히셔서, 권능의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셨던 것처럼 그의 후계자에게도 함께 하실 것임을 이스라엘이 확신하게 하셨다(수 3:7).🫰 그러므로 우리는 곧바로 출애굽기 14장으로 생각을 되돌리게 된다. 홍해에서 일어난 사건과 여기 요단 강에서 일어난 사건을 서로 비교하여 여러 대조점과 유사점을 살피는 것은 매우 흥미롭고도 교훈적이라 한다. 먼저 그 두 사건의 차이점들을 살펴보자. 첫째, 홍해 사건은 이스라엘이 종노릇하던 집에서 해방된 일을 종결지었고, 요단 강 사건은 약속의 땅으로의 입성을 시작하게 했다. 둘째, 앞의 이적은 이스라엘로..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에서 요단을 건너가나니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명을 택하라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한 곳에 쌓여 서리라"(수 3:11-13). 이 말씀으로 여호수아는 성경에 기록된 가장 놀라운 이적들 중의 하나를 명확히 선언하고 묘사하고 있다. 제사장들은 물가의 가장자리까지 행진하여 거기서 멈추어야 했다. 여호와의 임재 앞에서 요단 강물이 물러가는 것이 더욱 분명히 드러나게 하기 위함이었다.👍 헨리(Henr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없이도 강을 갈라놓으실 수 있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이 없이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여기서 제사장들은 ..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수 3:10).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는 칭호는 성경에서 이교도들의 죽은 우상들과의 대조를 지적하기 위해 사용되며(왕하 19:4; 살전 1:9), 여기서 여호수아가 그 칭호를 사용한 것은 모두 거짓 신의 무능함과 무가치함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 우상들은 전혀 도움을 줄 능력이 없고, 그것들을 섬기는 이들을 위해 이적을 행할 수는 더더욱 없다. 그러므로 이는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질 위험이 농후한 이스라엘에게는 경고이기도 했다. 여호수아가 여호와를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 칭했듯이, 그..
메시야의 비밀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b). 다윗은 동일하게 겸손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집"은 왕족에 속해 있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의 사위였다. 그렇기에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명예로운 집안과 관련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런 세속적인 특징을 가볍게 여겼다. "여기까지" - 왕위에까지 그리고 모든 적들에게서 벗어나 쉬기까지 - 라는 말은 하나님께 그분에게 합당한 영광을 돌리는 말이었다. "이것은 만약 하나님이 그를 이끌어 주시지 않았다면 그가 자신의 힘만으로 거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임을 암시한다. 우리의 모든 위업은 하나님이 하사하신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Matthew Henry).💕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겸손의 징표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이 말은 우리에게 다윗의 깊은 겸손을 얼마나 잘 제시해 주는가! 참으로 그는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시 131:1)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다윗의 삶에서는 이런 사랑스러운 장점을 보여 주는 실례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높은 공직에 올려 주시기 전까지 목동이라는 비천한 직업을 수행하는 것에 만족했다. 그는 자신의 왕권을 즐겨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설령 하나님이 그를 간과하시고 다른 이를 왕으로 삼으실지라도, 그것 때문에 슬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사울과 관련해 아비새에게 했던 말, 즉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