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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론 45] 성화론의 특성(3) 본문

성화론 (Sanctification)

[성화론 45] 성화론의 특성(3)

En Hakkore 2024. 4. 3. 10:14

1. 중생과 성화

이것은 중생에 대한 글을 비판적으로 읽은 자들과 성화의 특질을 다룬 글들을 세밀하게 따르는 자들에게 부각되는 주제일 것이다. 즉 우리는 중생할 때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과 성화에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 사이의 진짜 차이가 무엇인지를 전부는 아닐지라도 거의 대부분 다루지 않았다.

그 둘 사이를 구분 짓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것들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하게 선을 긋고자 한다면 그 주도적인 차이가 무엇인지를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두 세 단락에서 이 점을 다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각각의 관계성을 부각시키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 말미암아 이 문제를 고려하는 일에 도움을 받게 될지도 모르겠다. 즉 한 가지 측면에서 중생과 성화의 관계는 어린아이와 성인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중생과 성화의 연결고리를 어린아이와 성인의 관계로 설정함에 있어서 우리 마음에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의 성화가 아닌 실천적이고 점진적인 성화의 개념을 이미 지니고 있다는 점을 주지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의 상태를 고려할 때 우리의 절대적인 성화는 우리의 중생과 더불어 동시적인 사건이다.

우리의 중생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성령께서 우리를 일깨워 새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성화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성령의 내주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이라는 것이다. 그 시점으로부터 결과적으로 모든 점진적인 영적 생활이 이어진다.♡

즉 우리속에서 먼저 일어난 기름부어주심의 영향들이요 열매들이요 확정들로 나타나는 것들이다. 성막과 훗날 성전의 봉헌은 한 가지 행위였지만 단번에 모든 것을 이룬 사건이었다. 그 후로 그 성전의 지속성 혹은 영구성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있었다. 그러나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경험적인 측면이다.

중생에서 거룩의 원리는 우리에게 소통되어진다. 실천적 성화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감에 있어서 그 원리의 실천(exercise)이다. 중생에서 성령은 구원받는 은총을 수여해 주신다. 성령의 성화 사역에서 성령은 강화시키고 발전시키신다.

우리가 출생할 때 우리 안에 가지고 있는 내적 타락 혹은 '원죄'는 그 속에 모든 죄의 씨앗이 들어 있다. 그리하여 중생할 때 우리에게 수여되는 새로운 은혜는 그 속에 모든 영적인 은혜의 씨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성장하면서 그 씨가 자라서 열매가 드러나듯이 은혜의 씨도 마찬가지이다.♡

'성화는 전인적인 역사로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갱신이다. 그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은 매일 매일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게 된다. 중생은 탄생이요 성화는 은혜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성장이다. 중생에서 거룩의 태양이 일출한다. 성화는 그 일출된 태양의 운행과정이다.

완전한 날이 이르기까지 더 밝고 찬란하게 비추이며 원만한 광명에 이르는 것이다(잠 4:18). 전자는 본성으로부터 은혜로 이어지는 특별한 변화를 말하며(엡1 5:8). 후자는 은혜의 한 측면에서 다른 차원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말한다(시 87:7). 그로 인하여 성도는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까지 더욱더 강건해 지는 것이다'(조지 스윈녹, 1660)♡

따라서 성화의 기초는 중생에서 놓이게 된다. 그 거룩한 원칙이 우리 안에 처음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 거룩한 원칙은 회심에서 확인되며 회심은 죄로부터 돌이켜 거룩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사단으로부터 돌이켜 그리스도에게 나아가는 것이요 세상으로부터 돌이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 원칙은 죄 죽임의 일과 생명력 있는 역사 혹은 옛 사람을 실천적으로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일 가운데서 입증된다. 그리고 영화의 단계에서 완전케 된다. 그렇다면 중생과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성화 사이의 실제 차이는 전자는 신적 행동으로 단번에 이루신 일이요 후자는 하나님의 은혜의 신적 행위로서 그가 시작하신 일을 유지하고 발전시키며 지속되게 하고 온전히 이루시는 작업이다.

전자는 탄생이요 후자는 자람이다. 우리를 실천적으로 거룩한 자로 만드는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일깨우실 때 하나님이 가지신 의도이며 그것은 이 목적 달성을 위한 필요한 방편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화는 구원의 전 과정의 면류관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관한 현대의 가르침의 결정적 오류 중 하나는 거듭남을 신자의 영적 생활의 최고의 선(summum bonum)으로 간주하는데 있다. 그것을 목적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사실은 출발점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달성해야 할 목적이 아니라 그 목적을 향한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중생은 성화에 의해서 보충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혼은 묵묵히 남아있는 존재로 전략될 뿐이다(그게 가능하다면 말이다). 진전이 없으면 역행만 존재할 뿐이라는 것은 모든 영역에서 다 불변하는 원칙이라고 본다. 그 영적 성장은 점진적인 성화에 놓여있는 본질적인 것이다.

이것은 영혼의 모든 기능들을 중생할 때 심겨진 거룩의 원칙이 정결케 하고 규칙적으로 작동하는 영향하에 더욱 더 놓이게 되도록 이끈다. 그것만이 우리를 모든 일에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게 할 것이다(엡 4:!5).

Arthur W. Pink 성화론 p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