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연합과 친교 46] 생명적 연합 3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연합과 친교 46] 생명적 연합 3

En Hakkore 2024. 5. 8. 11:56

우리의 자연의 몸 안에서 그 지체들이 그들의 머리로부터 생명을 받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 안에서 그 지체들은 그들의 머리로부터 생명을 부여해 주는 성령을 받는다. "우리가 믿는 이것은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라고 나타나 있는 요한복음 1:16의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와 '충만함'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요한복음 1:16에서는 그리스도를 신성 안에 있는 제 2위로서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구절에서 보여주는 바와 같이 성육신하신(1:4)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신 중보자로서 나타내고 있음을 주목해보라.

그러면 그 임무를 이행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에게 공급하고 있는 중보자로서의 그의 '충만함'은 무엇인가? 그가 "성령을 기름붓듯"(행 10:38) 받은 것을 의미하는가? 요한복음 1:16에 있는 '충만함'이라는 말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라는 요한복음 3:34에 근거를 둔 것인가?

인간이신 하나님으로서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모든 충만함 가운데에서 성령을 '한량 없이' 받아들이실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진 이"(계 3:1)로서 나타나 있는데 그 영은 풍요함과 충만함 속에 계신 성령이다.

이사야 11:1, 2에 언급되어 있는 그리스도께 주어진 일곱 영을 보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중보자로서의 '충만함'은 그리스도 안에 '한량 없이' 거하시는 성령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 성령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또한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그리고 그들에게 성령을 전달해 주시기 위해서 성령을 받으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오순절에] 부어주셨느니라"라고 하는 사도행전 2:33에서 명백히 나타난다. 이와 같이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라는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성령 곧 "그리스도의 영"(롬 8:9), 그리고 "그 아들의 영")갈 4:6)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영을 그가 우리에게 전달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에 대한 아름다운 예는 요한복음 20:22의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마도 요한복음 1:16의 뒷부분인 "은혜 위에 은혜러라"는 말씀에 대해서 우리를 만족시킨 해석을 전혀 보지 못했기 때문에 거기에 대해서 약간의 언질을 해주어야만 할 것 같다.

포도나무에 있는 바로 그 생명이 '그 본성에 따라서' 만들어내는 가지마다에도 그 생명이 있는 것과 같이 성령이 그리스도 안에서 만드신(눅 2:40, 52을 보라) 바로 그 '은혜'를 그리스도께서 (본성에 있어서는 같지만 정도에 있어서는 같지 않을지라도) 그의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신다.

갈라디아서 5:22, 23의 아름다운 '열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 충만함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가? 그렇다면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도 어느 한도내에서 그와 똑같이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은혜 위에 은혜러라'는 말은 은혜에 부합하는 은혜를 의미한다. 즉 머리되신 이 안에 있는 것과 똑같은 영적 타락성이 그의 몸의 지체들에게 전해지는 것이다. 이와같이 그들은 그의 '형상'을 따르고 있다.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다"(고전 15:45). 그리스도께서 그의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성령을 보내시는 것이 바로 그러한 연유에서이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다"(딛 2:5,6).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느니라"(요일 2:20).

기름부음은 (고후 1:21; 요일 2:27 참조) 성령이며 성령은 '거룩하신 자'로부터 우리에게 오는데 그는 바로 그리스도이시다(시 16:10; 막 1:24).♡ 시편 133:2에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같고"라고 한 데서 기름부음에 대한 거룩한 표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그의 거룩한 임무를 말할 때 기름을 부으며 성령을 상징하는 그 '보배로운 기름'이 그의 머리에서부터 그의 옷깃이 닿는 땅까지 흘러 내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몸이 하나이니" 거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성령도 하나이다"(엡 4:4).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고전 12:13).

인간의 영혼과 몸이 연합하여 하나의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택한 자들과 그들의 머리가 연합하여 하나의 신비스럽고 영적인 몸, 곧 교회를 이룬다. 인간의 영혼이 가장 멀리 떨어진 지체들, 즉 머리와 발 사이에 살아있는 연합을 이루게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영은 하늘에 있는 머리이신 이와 땅에 있는 그의 지체들을 함께 살아있는 그대로 연합을 이루게 하신다.♡

"비록 사람이 그 머리가 하늘에 닿을 만큼 크지 않다 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단 하나의 영을 가진 한 사람이다. 비록 자기의 본성 안에 계신 그리스도와 우리가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 할지라도 그와 우리 속에는 하나이고 동일한 영이 존재하므로 우리는 하나의 신비스런 그리스도이다."(존 오웬)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땅에 있는 신도들 사이의 거리가 그들의 생명적 연합을 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되지 못한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편재하시기 때문에 머리와 지체들 모두 안에 내주하신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에 이루어진 연합의 살아있는 띠인 성령께서 존재하여 계신다는 확실한 증거는 로마서 8:11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을 살리시리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그 몸이 없이 무한하신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부활하신 머리가 그들의 몸 안에 성령의 소생케 하시는 능력을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살리신다.

이것은 자연계에서 훌륭하게 예시되고 있다. 즉 잠에서부터 깨어날 때에 생기가 먼저 머리를 소생시키며 그 다음 온 몸을 통하여 감각이 일깨워진다.

참으로 살아있는 연합은 그리스도와 그의 지체들 사이의 두 영혼을 함께 연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들 모두 안에 내주하시며 기름을 부어 주시는 성령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무한히 존재하시는 그는 참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들을 그들 속에서 연합시킬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전 인격이(고전 6:15) 그리스도의 전 인격과 연합하게 되는 것이다.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우리의 고귀한 구속자 안에 살아계신 바로 그 성령께서 땅에 있는 그의 백성들 안에도 살아계신다.

이러한 영적 연합에 의해서 왕과 그의 신하들 사이에라든지 심지어 남편과 아내 사이에 이루어진 것보다는 훨씬 더 축복된 관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와 그의 백성들을 연결하는 띠는 너무도 가깝기 깨문에 그는 그들 안에 내주하고 계신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은혜'는 그리스도의 것으로, '사랑'은 하나님(아버지)의 것으로 단정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교통하심'은 분명히 성령께 속하는 것이라고 한 것에 주의하는 것이 좋겠다.

앞의 여러 장에서 자주 언급했던 것처럼 먼저 연합을 이루지 아니하면 '교통하심'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연합과 친교는 성령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 8:9).

그러한 자는 아직 살아있는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신비스런 몸과 결합되지 않은 자이다. 여기에서 이러한 설명적 연합이 참으로 은혜롭고 영광스러운 것임을 지적해야겠다. 그러나 이것은 '중보적' 연합보다 훨씬 아래 단계에 있다.

중보적 연합은 두 개의 다른 본성, 즉 신성과 인성으로 하나의 인격을 이루는 것이고 이 생명적 연합은 다른 인격들이 한 몸 곧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 연합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연합과 친교 p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