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 Hakkore

[영적인 실천 166]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실천 166]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최상

En Hakkore 2024. 4. 30. 12:25

하나님의 최상의 복을 즐김(반대 의견들 8)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아의 문제를 깊이 회개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자백하고 성실하게 죄를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매가 다윗과 다윗의 집에 떠나지 않은 것을 들어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은 정말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이 문제를 풀려면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중시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의 매듭을 잘라버리는 꼴이 될 것이다. 다윗의 이 범죄는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범죄가 아니었다. 그의 죄는 모세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하였다. 더구나 그의 죄는 선지자요, 이스라엘의 시편 저자요, 왕이라는 그의 지위로 인해 더욱 더 무거워진 것이다.

그처럼 높은 공직 혹은 지도자의 임무를 가진 자가 저지른 죄는 하찮은 사람이 저지른 꼭같은 죄보다 훨씬 더 가증스럽고 그렇기에 그 결과가 더 무거운 것이다. 그렇기에 주님은 "그의 죄의 악을 사하시되"(시 32:5), "칼이 네 집에 영영히 떠나지 아니하리라"(삼하 12:10)고 선언하셨다. 죄책과 형벌의 효력은 끝났지만 통치권의 효력은 계속되었던 것이다.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당신의 낳은 아이가 정녕 죽으리이다... 밤새도록 땅에 엎드렸으나" 소용이 없었다. 하나님은 누구를 '편애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신실을 보여주시기 위해, 그가 비록 왕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일지라도, 하나님은 아버지의 죄를 그 아들에게 돌리셨다.

'칼'이 그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후손들이 폭력에 의해 최후를 맞게 되었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으시며, 그런 행위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보여주시고 그 영예를 입증하시기 위해 이스라엘 왕의 죄를 평범한 처벌로 끝내지 않으신 것이다. 다윗이 회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죄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적 효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실은 그의 공적인 특성을 기초하여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 또 다른 예는 모세와 아론의 경우이다. 이스라엘의 지도자였고 그들은 므리바에서 하나님을 불신하였기 때문에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민 20:12, 24)

앞에서 설명한 내용들을 심사숙고해 본 독자들 중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욥이 당한 어려움을 기억하면서 욥이 당한 어려움과 앞에서 되어진 이야기가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성스러운 족장 욥이 받았던 혹독한 시련을 기록한 욥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논의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의 한계를 넘는 일이 분명하다.

첫째, 욥기는 특이하고 매우 독특한 내용을 전하고 있으며 사단의 위치나 하나님께 대한 사단의 도전 등과 같은 매우 신비한 이야기들도 전하고 있다(욥 1:6-12).

둘째,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전후 관계를 고려해 볼 때 여기서 욥의 고난을 논의한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왜냐하면 욥의 경우는 전적으로 전례가 없는 경우였기 때문이다. 욥기의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욥과 다투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욥이 하나님으로부터 유익을 얻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모함하는 사단과 그 사단이 거짓말장이임을 입증하시려는 하나님과의 대결을 담고 있는 것이다.

사단의 공격은 욥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겨낭한 것이었다. 사단의 도전은 사실상 이런 것이었다. "하나님이여, 당신의 됨됨이로서는 인간의 신뢰나 사랑을 받을 수가 없소. 욥에게도 역경과 어려움으로 다스려 보시오, 그러면 그가 당신을 기뻐하고 충성을 다하기는커녕 '당신의 면전에서 당신을 욕하게' 될 것이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영예는 모독을 받게 되었고, 도전받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도전을 받아주셨고 결국 그의 종 욥의 원수의 손아래 넘겨 그의 재산과 가족, 그리고 욥의 몸에까지 원수의 박해를 받도록 허락하셔서 사단의 도전이 거짓임을 증명하신다.

만일 우리가 욥기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예를 드러내시고 욥의 사랑과 믿음을 보이심으로써 사단의 고소를 기각해 버리시기 위한 것으로 보지 않고 욥의 죄(혹은 '스스로 의롭다고 여긴 것') 때문에 그를 징벌하신 기록으로 본다면 욥기의 목적과 핵심적인 주제는 상실될 뿐만 아니라 매우 곡해되어 버리는 것이다.

욥은 하나님을 저주하기는커녕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말했으며 그 후 사단이 더욱 심한 곤경에 그를 빠뜨렸을 때에도 욥은 '그가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를 의뢰하겠다'고 말하였다.

세째, 사단이 하나님께 도전을 허락받기 전에 하나님은 욥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씀하셨다. "그와같이 순전하고(성실하고 완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없느니라"(1:8). 애초부터 욥의 신앙은 확실해서 흔들릴 여지가 전혀없었다.

욥기 1:1을 보면 알겠지만, 욥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해드렸기 때문에 그가 고난을 당했다는 결론을 내릴 만한 근거는 없다. 더구나 성경의 성인들 중에서 욥만큼 성령님이 칭찬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네째, 욥기는 "여호와께서 욥에게 그 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다", "여호와께서 욥의 노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셨다"(사 42:10, 12)고 기록하면서 끝맺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의인이 번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미소가 머문다'는 우리의 주장은 욥의 경우에 있어서도 모순되고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욥의 경우가 그 강력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실천 p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