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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연합과 친교 12] 신성의 연합 5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실천 (Practical Christianity)

[영적인 연합과 친교 12] 신성의 연합 5

En Hakkore 2024. 5. 6. 09:42

여기에서 논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는 은혜로운 복음에 계시된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한 지식도 포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의 본질과 서로에 대한 구별된 관계,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 안에 있는 신성의 여러 위들에 대해서 아는대로 믿어야 하고 승인해야 한다.

무한한 본체 안에 그들이 존재하신다는 지식이 아닌, 그들의 존재 자체에 대한 진리는 우리의 믿음과 믿음 안에 있는 축복을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것이다. 또한 그들이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시라는 사실을 스스로 어떻게 계시하셨는가를 안다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다.

그리하여 그들이 우리와 어떤 관계이며, 영원한 계약 안에서 그들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을 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아버지를 아는 것, 즉 영원하신 사랑으로 사랑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아버지가 되는 것이 곧 영생이다.

아버지와 더불어 하나이시며 영원 전부터 아버지와 똑같은 본체이시며 동시에 인간이 되시려고 예정된 아들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똑같은 본체와 영광과 완전한 거룩함을 가지셨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구별되는 특성을 지난 성령을 아는 것이 곧 영생이다.(S. E. 피어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을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이 성경에 분명하게 계시되어 있으므로 우리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체와 존재에 대해 알고자 할 때에 우리를 가르치실 수 있는 그분만의 충분한 증거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셋이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니라 이 셋은 하나이니라"(요일 5:7).(한글 성경에는 없음). 삼위 각각에 대한 신성의 완전함은 성경의 수많은 구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 삼위의 각각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분명한 사실은 오로지 한 분의 여호와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해결할 수도 없고 극복할 수도 없는 이 신비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다.

"가능하다면 우선 우리가 그 결과에 관해서 익히 알고있는 일들의 성격과 본질과 그 속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풀잎의 성장을 설명해 보거나 혹은 천연자석의 힘에 대해 셜명해 보자. 우리가 이것을 능히 설명할 수 있을 때까지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마땅하다."(죤 뉴톤).

위가 복수형태인 것은 하나님이 분리되어 있다는 의미가 아니고, 아버지는 신성의 한 부분이고 아들은 다른 부분, 성령은 또 다른 부분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본성이 곧 신성이시라는 사실은 단순하고 절대적으로 생각되어져야만 한다. 즉 한 위는 신성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존재하신다"(W. 퍼킨스. 1595).

분명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본체 그 자체가 아니고, 하나님의 본체 안에 연합되어 있는 신성한 각 위들이다. 여호와는 삼위 안의 일체로, 유일성을 띤 삼위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 즉 유일하신 하나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성경을 서로 비교해보면, 신성의 연합은 각 위의 일체가 아니라, 본성과 본성의 일체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 여호와라고 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위엄을 갖추신 신성 안에 삼위가 계시는데 그 삼위는 똑같은 속성과 완전함을 가지고 있으며 똑같이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복수라고는 하지 않고 있다.

영원하신 삼위 각각이 같은 신성의 본체를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은 그들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각 위는 '하나님'으로 불리운다. 즉 히브리서 1:1의 하나님은 아버지를 가리키며, 히브리서 1:8의 하나님은 아들을, 사도행전 5:4의 하나님은 성령을 가르킨다.

또한 3절을 살펴보라. 또한 각 위는 '여호와'로 불리워진다. 즉 시편 110:1의 여호와는 아버지를, 시편 23:1의 여호와는 아들을, 이사야 11:2의 여호와는 성령을 나타낸다.

또한 각 위는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일컬어진다. 즉 마태복음 16:16에서는 아버지를 지칭하고, 히브리서 3:12과 디모데전서 4:10에서는 아들을, 고린도후서 6:16에서는 성령을 지칭한다(고전 3:16 참조).

또한 각 위는 '전능자'라고 묘사되어 있는데, 고린도후서 6:18에서는 아버지를, 요한계시록 16:7에서 아들을, 욥기 32:8에서는 성령을 전능자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각 위를 '샘'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예레미야 2:13에서는 아버지를, 스가랴 13:1에서는 아들을, 요한복음 7:38에서는 성령을 나타낸다. 제1위는 에베소서 1:17에서 '영광의 아버지'로, 제2위는 야고보서 2:1에서 영광의 주'로, 제3위는 베드로전서 4:14에서 '영광의 영'으로 칭해졌다.

이 세 가지 이름, 즉 아버지, 아들, 성령은 똑같이 존엄한 한 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다양한 명칭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특성은 세 가지이지만 동등하게 신성한 위들에 속하는데 이것은 성경에서 자주 그들이 서로 다른 위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소개되는 사실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시편 2편에서 메시야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7,8절). 시편 40편에서 아들이 아버지에게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7,8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시편 45편에서는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에게 이르시기를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6절). 또한 시편 110편을 보면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1절).

과연 신성 안에 있는 위들의 특성을 이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Arthur W. Pink 졍적인 연합과 친교  p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