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371)
En Hakkore
두려움 이제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다섯 덩이의 떡을 요청했다(삼상 21:3). 그가 제사장의 개인 집 앞이 아니라 성막 문에 서 있었음을 염두에 두라. 거기에서 제공될 수 있는 것은 성소에 있는 황금 식탁 위에 일주일 동안 진설되어 있던 열두 덩이의 떡밖에 없었다. 그것은 다른 열두 덩이의 떡으로 대체되면서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의 양식이 될 떡이었다.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자기와 자기의 수하들이 출애굽기 19장 15절에 기록된 요구들을 충족시켰음을 보장하면서 그 떡을 자기에게 달라고 재촉했다. 아, 이새의 아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떨어진 것인가! 다윗에 대한 사울의 뿌리 깊은 적의가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였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돕는 것을 두려워했고 주저했다. 마태복음 12장에서 우리는 주 예수께서 다윗의..
육체와 성령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삼상 21:1a).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타락한 상태에 있을 때, 그의 행동은 낯선 수수께끼처럼 보이고,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방식은 그 어떤 심리학자도 설명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는 신자들까지 포함해-설명할 수 없을 듯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 갈라디아서 5장 17절의 말씀을 통해 해결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동안 나는 이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두 가지 본성들 사이의 갈등, 즉 인간 행위의 두 가지 주요 원인인 "육체"(flesh)와 "성령"(Spirit) 사이의 타..
불신앙 사울의 추적에 놀란 다윗은 나욧에 머물면서 조용히 하나님의 선하심의 다른 증거를 기다리지 못하고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사로잡히는 대신 자기를 쫓고 있는 강력하고 지독하고 피에 굶주린 적의 모습만 바라보았다. 그로 인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게 된다.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삼상 20:1a). 사실 그는 사울을 피해 도망했지만, 그것은 또한 사무엘에게 등을 돌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아버지 앞에서 내 죄가 무엇이기에 그가 내 생명을 찾느냐"(1b절). 다윗이 하나님의 선지자가 아니라 요나단과 상의하고 있음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기 위한 열쇠는 대개..
사무엘을 찾아감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사울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다 전하였고 다윗과 사무엘이 나욧으로 가서 살았더라"(삼상 19:18). 다윗에게 기름을 부은 것은 사무엘이었다. 또한 다윗은 그를 통해 처음으로 왕국에 대한 약속을 받았다. 어쩌면 지금 다윗이 그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은 것은 자신의 믿음을 강화하고, 이제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조언을 듣고, 현재의 고난에 대해 위로를 얻고, 그의 우정과 기도를 얻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마도 그때 다윗은 자신이 주님의 마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은 사무엘을 통해서일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사무엘이 있는 곳이야말로 자기가 이 세상에서 머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겼을 것이다. 나욧은 라마에서 가까웠..
도피 "그는 사울의 앞을 피하고 사울의 창은 벽에 박힌지라 다윗이 그 밤에 도망하매"(삼상 19:10). 하나님이 자신의 사람을 돌보시는 방법은 얼마나 놀라운가! 그분의 보호하시는 손길은 비록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얼마나 실제적인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마 19:29). 우리가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시 34:7)라고 노래할 수 있다면, 우리의 마음은 얼마나 큰 평화와 안전을 누리겠는가! 사람들은 우리에 대한 적의로 가득 차고, 사탄은 분노하며 우리의 멸망을 추구할 수 있느나,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리지 못한다. 전능하신 주님은 그분을 신뢰하는 모든 이에게..
사울의 헛된 약속 요나단의 간청은 성공적이었다. "사울이 요나단의 말을 듣고"(삼상 19:6a). 사울은 자기 아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을 뿐 아니라, 그가 한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다윗의 목숨을 빼앗으려 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시인했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시 요나단의 중재와 주 예수님이 행하신 자기 백성들을 위한 중재 사이의 놀라운 차이가 드러난다. 요나단의 중재는 자기 아버지에게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효과밖에 주질 못했다. 반면에 우리의 옹호자께서 행하신 중재는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다. 그분의 이름이 영원토록 찬양받으시기를!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그가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리라"(6b절).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우리는 사악한 사람이 경건한 표현들을 얼마나 쉽게 사..
사무엘상 18장 마지막 절에는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자가 제공하는 예표적 모습 중에서도 가장 복된 측면을 보여 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다윗이 사울의 장군들보다 더 큰 전과를 올렸기 때문에, 다윗은 아주 큰 명성을 얻었다(much set by, KJV, 표준새번역")(30절). 이에 대한 난외주(欄外註)는 훨씬 더 시사적이다. "그의 이름이 심히 귀하게 되니라(precious, 한글 개역성경에는 이미 그렇게 번역되어 있다 - 역주)." 이것은 그의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은"(아 1:3) 분에 대한 얼마나 사랑스러운 예시인가! 그렇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분의 아버지와 그분의 백성 모두에게 "심히 귀하다." 그분이 "천사보다 훨씬 뛰어남은 그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셨기 때문이다..
미갈의 사랑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린지라 사울이 그 일을 좋게 여겨 스스로 이르되 내가 딸을 그에게 주어서 그에게 올무가 되게 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으로 그를 치게 하리라 라고 이에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오늘 다시 내 사위가 되리라 하니라"(삼상 18:20-21). 사악한 왕의 목적에 적합한 새로운 기회가 나타났다. 그의 또다른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자 사울은 메랍 대신 그녀를 다윗에게 주겠노라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 자기가 다윗의 죽음을 초래할 기회를 얻게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우리는 이 마귀에 사로잡힌 왕의 형태를 넘어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롬 8:28) 하시는 분의 놀라운 방식을 바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