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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ife of David 26] 방황(사무엘상 20-21장) 본문

강해시리즈/다윗의 생애 (Life of David)

[The Life of David 26] 방황(사무엘상 20-21장)

En Hakkore 2024. 2. 16. 12:40

육체와 성령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삼상 21:1a).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벗어나 타락한 상태에 있을 때, 그의 행동은 낯선 수수께끼처럼 보이고, 그의 일관성 없는 행동방식은 그 어떤 심리학자도 설명해 내지 못한다. 그러나 많은 이들에게-그릇된 정보를 갖고 있는 신자들까지 포함해-설명할 수 없을 듯 보이는 여러 가지 일들이 갈라디아서 5장 17절의 말씀을 통해 해결된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동안 나는 이 구절을 통해 그리스도인 안에 있는 두 가지 본성들 사이의 갈등, 즉 인간 행위의 두 가지 주요 원인인 "육체"(flesh)와 "성령"(Spirit) 사이의 타협할 수 없는 대처에 대해 설명해 왔다.

이 두 가지 원인들 중 어느 것이 우리에게 작용하고 우리를 지배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행위가 결정된다. 이 구절의 마지막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육체"는 "성령"이 이 세상에서 그것이 바라는 것을 완전히 실현하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이고(롬 7:15-25), 다른 하나는 "성령"은 "육체"가 완전히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여러 가지 신비로운 경험들에 대한 열쇠를 제공하며, 구약 시대 성도들의 다양한 이야기들에 큰 빛을 비춰준다.

우리는 이 문장을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엘리야 등의 삶에 비추어 여러 가지 말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그렇게 하는 대신 우리의 주인공인 다윗의 이야기에만 초첨을 맞추기로 하자.

그가 들짐승들의 공격에 맞섰을 때(삼상 17:34-36). 성막을 향해 열심을 품었을 때(시 132:107). 그리고 골리앗과 교전했을 때는 "성령"이 그를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그의 마음에는 여호와가 있었다. 그의 용기와 믿음에 대한 극심한 시험이 있었음에도 여호와에 대한 그의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후 한동안 그는 왕의 가속이 되어 지냈는데, 오히려 이때 그는 그의 영성을 유지하는 데 애를 먹었다. 그리고 사울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거듭 그의 목숨을 노렸을 때, 그는 은혜의 외적 수단들을 빼앗겼고 그의 믿음은 깃발처럼 나부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자 그 자리에 두려움이 들어섰다. 그의 마음은 여호와로 가득 차지 않았고, 그의 눈에는 강력한 적의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사울에게서 도망친 후 다윗은 즉시 사무엘을 찾아갔다. 이것은 아직도 "육체"가 그를 완전히 주장하고 있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사실 참으로 중생한 영혼의 상황은 늘 그러하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럼 6:14). 죄는 결코 당신을 자신의 완전한 노예로 만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사무엘을 떠나 요나단에게 도음을 요청하러 갔을 때, 우리는 그의 "육체"가 그의 행위를 규제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은 그가 자기 친구의 입에 거짓말을 넣어 주는 것을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그가 아히멜렉을 찾아간 후 보인 행동을 통해 그 안에서 작동하고 있는 갈등을 인식하게 된다.

이제 다윗은 자신이 사울에게서 더 좋은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왕이 살아 있는 한 그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궁정에서 쫓겨난 그는 이제 외로운 방랑자가 되었다. 그러나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그의 마음은 놉을 향했다. 그곳은 성막(聖幕)이 옮겨져 있던 곳이었다.

제사장을 속이다

다윗이 놉으로 간 데에는 여러 가지 동기와 생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이제 자신이 쫓기는 자가 되었음을 알게 된 그는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성막에 작별을 고하고 싶었을 것이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에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했던 것이 자신이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멀어져 그곳에서 거행되는 공적인 제사에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이었음은 그의 여러 시편들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로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요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2, 10 그리고 42:3-4 참고).💕

둘째, 사무엘상 22장 10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다윗의 목적은 제사장에게 여호와의 뜻을 묻고, 자신이 나아갈 길과 관련해 그분으로부터 지시를 받으려는 것이었다.

셋째, 이후의 내용을 본다면, 음식을 얻으려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삼상 21:1b).

분명히 제사장은 다윗이 사울의 진노를 샀다는 소식을 들었을 것이고, 따라서 그가 도망자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왕의 됨됨이를 알고 있던 아히멜렉은 자신이 다윗을 공대함으로써 자기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게 될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는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1c절)하고 물었다.

당시 다윗에게 몇 명의 시종들이 있었음은 본문 4절과 마태복음 12장 3절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그가 전장과 궁정에서 높은 명성을 얻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행차에 시종이 딸린 마차가 따랐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있을 법한 일이었다. 제사장이 도망자 다윗에게 보인 조롱은 몰락해 가난해진 영웅에 대한 세상의 무자비한 태도를 보여 준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은 아무것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말하였나이다"(삼상 21:2).

여기에서 다시 우리는 다윗이 조악한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시인이 스스로 여호와의 뜻을 물으러 찾아간 하나님의 집 문턱에서 교묘한 거짓말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참으로 우리 모두는 "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시 119:29) 하고 기도할 필요가 있다.

다윗은 제사장이 던진 당혹스러운 질문에 움찔했다. 그리고 홀로 블레셋의 거인과 맞섰던 그가 이제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아, 신앙이 작동하지 않는 곳에는 신앙이 제공하는 차분함과 용기도 있을 수 없다.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 4백 명과 맞설 때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나, 나중에 이세벨이 두려워 도망을 쳤다. 베드로는 배에서 물 위로 발을 내디뎠지만, 어느 하녀 앞에서 무서워 떨었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좋은 시절보다는 어렵고 힘든 시절에 하나님을 신뢰하기가 더 어렵다.🤞

"참으로 다윗은 전에도 종종 어려움과 위험을 겪었다. 골리앗과 싸운 날 이후에는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있었다. 즉 이전에 어려운 일을 겪을 때 그는 승리를 구가할 수 있었다. 어두운 구름 위로 얼마간 밝은 빛이 비쳤던 것이다.

모든 어려움 뒤에는 얼마간의 명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님이 더이상 자기를 위해 개입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사울의 끓어오르는 적의는 제어되지 않았고, 하나님은 개입하시지 않았다. 그분은 그의 적의를 누그러뜨리지도 징계하지도 않으셨다.

이제 더이상 그분은 모든 상황 속에서 자기를 높이시려는 듯 보였다. 다윗의 마음은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했다. 무언가를 정복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무언가에 정복당하면서 그분을 신뢰하는 것은 전혀 별개 문제다"(B. W. Newton).

Arthur W. Pink 다윗의 생애1 p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