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07 (15)
En Hakkore
오늘날 그렇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어찌하여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서 그렇게 절감하지 못하는가? 여기에 대한 주요한 이유는 그들이 잘못된 가르침을 배워 왔기 때문이다. 이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죄성을 가볍게 생각하며, 하나님 율법의 영성과 엄정함을 그저 막연히 깨닫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 희미한 개념밖에 없다.♡ 따라서 그들의 양심은 마비되었고 자신의 현상태에는 눈이 감겼으며 거기에서 빠져나갈 길을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 '내 양은 결코 빼앗기지 않는다' 는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어 왔기 때문에 타락한 자는 당연히 회복함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조건들에 부합하는 것이 인간 편에서 얼마나..
이제 우리는 회복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우리 중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가 이런 데까지도 언급할 필요가 있겠는가 세목을 들어 논할 가치가 있겠는가 하고 의아스럽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만약 그러하다면 확실히 그들은 다음의 사실들을 잊어 버리고 있는 것이다. 즉 사단이 많은 죄인들에게 완전히 소망이 없다고 속삭이고 있음으로, 그들은 자비를 얻지 못할 정도로 하나님께 반역하며 완전한 절망의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 그는 타락한 성도와 함께 동일한 전략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특권과 빛에 대해 죄를 지었음으로 완전히 절망적이라는 확신을 심어 줄 것이다. 죤 번연의 일대기를 읽은 사람들은 이를 잘 알 것이다. 그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그렇게 오랫동안 누워있었음으로 그때 마귀가 그에게 와서 도저히 용서받지..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일이 있다. 영적인 타락으로 고통하는 자가 도움을 얻기 위해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에게로 간다면 대단히 잘못된 충고를 받을 확률이 있다. 두려운 사실은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라도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있어서 참으로 자격을 갖춘 이들이 얼마 안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치유 방법은 임시 방편을 사용하였음으로, 고통이 다 제거되었다고 안심했을 때는 더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어, 그들은 결국 '쓸데없는 의원'(욥 13:14)으로 드러날 것이다. 사람들이 그러한 설교자나 목사들과 상의한다면 그 결과는 많은 진전을 보이지 못할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충한 제사장들에 관하여 한탄을 하셨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
오늘날 당신은 '탕자'의 경우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아버지 집의 풍족한 품삯이 당신에게는 해당되지 않으면 먼 나라의 '쥐엄 열매'를 먹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불안한 마음, 불편한 삶, 괴로운 양심, 이 모든 것들이 당신의 분깃이다. 당신은 이렇게 울부짖고 싶은 마음이 없는가? "내가 이전 달과 하나님이 나를 보호하시던 날에 지내던 것같이 되었으면 - 그때는 그의 등불이 내 머리에 비취었고 내가 그 광명을 힘입어 흑암에 행하였었느니라 나의 강장하던 날과 같이 지내었으면 - 그때는 하나님의 우정이 내 장막위에 있었으며..."(욥 29:2-4). 당신이 그 복된 체험을 다시 누리지 못함은 누구의 책임인가? 그렇다, 모든 관점에서 미루어 볼 때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해야 할 필요..
우리는 영적인 타락에서 회복해야 할 긴박한 필요성에 대해 명백히 밝히려고 노력해 왔다. 우리는 이제 회복의 적법성에 대해 관심을 돌리고자 한다. 먼저 하나님을 향한 면에서 살펴보자. 부유하신 자가 나를 위해, 나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머리 둘 곳도 없이 가난하게 되셨다면, 나에게서 그는 어떠한 대우를 받아야 하겠는가? 당신을 살리시기 위해 그가 십자가에서 치욕의 죽음을 당하셨다면, 당신의 생명을 그에게 돌림이 마땅치 않겠는가? 당신이 그리스도의 것이라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사신 바 되었으며'(고전 6:20) 당신은 '몸과 마음으로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부름받은 것이다. 그가 우리의 연약한 감정으로 연합하였다면, 우리가 우리의 처음 사랑을 저버리고 그의 경쟁자와 사랑을 나누었다..
신앙을 공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그들 경건의 생활이 상당한 정도로 타락하였지만, 죽기 전에 회개하면 된다는 식으로 자위하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보증받지 못할 위안일 뿐 아니라 은영중 하나님을 시험하는 결과가 된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지적했다. "누구든지 타락의 늪 속에 뛰어들어가서 회개하면 들림받는다는 생각으로 거기서 마음 편히 안주하면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베드로와 유다가 그렇게 했지만 결과는 둘 중 하나밖에 뛰쳐 나오지 못했다. 수천 명의 공언자들이 지금 고통 중에 신원하고 있음을 보면 두려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들은 이 땅에서 훌륭한 사람이라 일컬음을 받았으며 죄는 용서받은 것으로 착각했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신랑이 왔으니..
"네가 미지근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현상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거기에서 구토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뜨거운 것과 찬 것이 뒤섞이면 미지근하게 되어 위에서 매스꺼움이 일어난다. 이것은 거룩한 자에 대한 변덕스런 그리스도인의 경우와 같다. 이 자는 산토끼를 쫓아가 사냥개를 잡는 자 같아서, 한 쪽에는 교회에 한 쪽에는 완전히 바깥에 마음을 두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뒤죽박죽되게 한다. 주님은 이런 자에게 "내가 너를 네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신다. 즉 그의 이름을 아버지와 그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다음의 말을 유의해 보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