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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104] 성장의 회복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104] 성장의 회복

En Hakkore 2024. 4. 7. 08:21

"네가 미지근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현상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가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말씀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거기에서 구토를 비유로 말씀하셨다. 뜨거운 것과 찬 것이 뒤섞이면 미지근하게 되어 위에서 매스꺼움이 일어난다. 이것은 거룩한 자에 대한 변덕스런 그리스도인의 경우와 같다.

이 자는 산토끼를 쫓아가 사냥개를 잡는 자 같아서, 한 쪽에는 교회에 한 쪽에는 완전히 바깥에 마음을 두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뒤죽박죽되게 한다. 주님은 이런 자에게 "내가 너를 네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고 말씀하신다. 즉 그의 이름을 아버지와 그의 거룩한 천사들 앞에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그러나 다음의 말을 유의해 보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 이것은 그리스도의 평가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말씀과같이 '심령이 가난한 자'(마 5:3)가 아니라, 자신을 '부자'라 한다. 그는 거지와같이 도움을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그는 자신의 무지, 약함, 공허함을 느끼지 않고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그를 위험과 절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주원인이다. 그는 필요함을 전혀 지각하지 못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생겨날 때 교만과 자만도 그러하며 이것들이 신령한 안목을 가리킨다. 바리새주의와 자만은 서로 분리할 수 없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하는 자들이다.

"하나님 제가 다른 이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나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우리도 보지 못하는 자냐?"라고 묻자 그는 "그러하도다 너희 죄가 그것을 가리웠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자랑한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금식하며 가진 소유의 십일조를 바치었나이다." 하여서 그들은 생각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필요한 것이 없노라"고 한다.

그러나 바로 이것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벌거벗겨 가련하고 비참한 것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은 또한 그리스도에게 가장 싫어 버린 바 된 지겨운 것들이 뒤죽박죽되어 급방 토할 것만 같은 형태를 말한다. 교리에서는 정통이지만 행위는 부패하였음을 말한다.

믿음에는 자칭 정통이라고 건전하다고 주장하지만 자신과 달리하는 자들에 관해서는 몰인정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자이며, '고차원의 교리'를 갖고 있다지만 형제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그리스도에게 거치는 자가 됨을 말한다.

방금 우리 앞에 서술된 자와 같은 성품의 소유자가 타락했다지만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솔직이 말해서 우리는 잘 모른다. 우리는 어떤 성도가 얼마나 깊은 수렁에 빠져 옷을 더럽혔는가를 모른다.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위험을 가하고 그들을 토해 내치기 전에 최종적으로 호소를 하셨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그러나 우리는 '가장 중요한 그것'이 실제로 그들에게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판가름할 수 없지만, 두 가지 분명한 사실을 안다.

첫째 내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면 멀지않아 나의 신앙고백은 '죽은' 고백이 될 것이며, 회복하기를 힘쓰지 아니하면 곧 라오디게아 교회의 꼴이 될 것이다. 둘째 어떤 사람이 라오디게아에 있었다면 그를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게 하는 성경적인 증거가 없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그를 그렇게 보지 않았을 것이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