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05 (15)
En Hakkore
이제 우리는 말씀을 높이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말씀의 목적을 바로 알고 거기에 따라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하겠다. 말씀은 우리에게 기록되어진 주요한 목적에 대해 분명히 알려 준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 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성경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감동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본래적으로, 필연적으로 유익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이 성경의 수신자들에게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들을 만들어 내시지 않는다. 그러면 성경이 어떤 점에서 유익한가? 첫째, 교훈에 관해서이다. 이것은 즉 "경건에 관한 교훈"(딤전 6:3). 온전하고 건전한 교훈을 말한다. 이 말 교훈의 뜻은 '가르침' 혹은 '훈도' 혹은 '원리'를 의미한다. 우리..
3. 말씀을 높이는 일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시고 무오한 말씀을 우리의 모든 애정과 사상과 일상 생활 가운데서 마땅한 위치에 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우리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이유를 알고 깊이 깨달음을 받은 대로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은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시 138:2) 하신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거기에 둔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른 무엇보다도 훨씬 높이는 결과에 이를 것이다(시 119:72). 우리가 말씀을 떠난다면 영적으로 완전한 암흑 가운데 빠질 것이다(엡 5:8). 성경을 떠나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우리에 대한 그의 태도에 대해서, 그에 대한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성경이 아니고서는 죄의 본성이나 해악을 알지 못하고 죄의 오염이나..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이러한 우리의 드림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은총에 비해 매우 보잘것없고 하찮은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 바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시며 또 기쁘게 표현하셨다. 이 말은 "행악한 자의 희생은 여호와께 싫어함이 되느니라"(잠 15:8)는 말씀과 날카롭게 대조된다. '영적예배'(reasonable service)보다 나은 역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리적이고 합당한 방식은 신빙성이 있는 대안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확실히 지적으로 섬김받기를 원하고 계시지만 맹목적으로 미신적으로 섬김받기를 원치 않으시기 때문이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말씀에 따라 합당한 예배'라고 번역될 수도 있다. '섬김'(service :그러나 개혁성경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삶을 살도록 부름받았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 아무리 자신해서 드려진다 해도 희생에는 희생의 대가가 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일치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이다(빌 3:10). 이것은 지적으로, 자의적으로 행해져야 한다. 이것은 마치 진정으로 만족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같이, 마치 어떤 사람이 결혼생활에서 그 자신을 상대편에게 아낌없이 바치듯이 신자는 "나는 나의 사랑하는 자의 것이고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의 것이로구나"(아 6:3)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통회하고 슬퍼하는 마음으로 비천하게 행해져야 한다. 이는 내가 그렇게도 오랫동안 죄에 머물러 있었으며 그것의 종..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 말씀은,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한 것들을 그를 위하여, 그의 섬김을 위하여, 그의 기쁨을 위하여, 그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바치다'란 이 말은 히브리어로 자람이며 미가 4:13에 '성별하다'로, 에스겔 44:29에 '헌신하다'로 번역되어 있다. '드리다'란 이 말은 헬라어로 파리스테미이며 누가복음 2:22에서 우리는 예수를 드리는 사건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주께 드리니라"를 보게 된다. 그리고 바로 다음 구절에서 '주의 거룩한 자'라는 말을 본다. 이 최초로 언급된 말씀이 우리의 위대한 주님의 예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매우 의..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함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주요한 목적이며, 본질적인 의무이며, 특출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 서신서에서 분명히 명시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러한 호소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이며 대부분 서신서들의 권고하는 부분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을 통하여 바울 사도는 복음의 중요한 교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는 한때 로마서 6:11-22의 권고를 삽입함으로써 말의 실마리를 풀어 나갔다. 이들의 의미가 다음과 같이 간단하지만 포괄적으로 요약하여 나타나 있다.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2. 하나님께 헌신 육체를 죽이는 이 평생의 과업은 결국 부정적인 측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인 측면으로서 구속받고 중생받은 자들은 하나님을 위해 살며, 자신을 온전히 그에게 바치며, 그를 기쁘시게 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기능과 능력들을 사용한다. 그가 중생하지 않았을 때에는 '자기의 길'(사 53:6)로 나갔으며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해 행하였으나, 중생 후에 그는 육체와 세상과 악마를 미워하였으며 하나님을 절대적인 주님으로, 지고의 목적으로, 영원한 분깃으로 모셔들인다. 육체를 죽이는 일은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것들을 돌이키고 부인하는 것을 말하며 이것을 매일 새롭게 계속적으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헌신은 신자가 중생할 당시에 주님께 자신을 드리고(고후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