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2024/04/04 (15)
En Hakkore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이 중대한 과업을 성취하는가? 첫째, 악한 성향을 죽임으로써 가능하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 그것의 불을 끄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연료를 공급하지 않음으로써 다른 하나는 거기에다 물을 뿌림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육체를 쇠약하게 하거나 독단적인 금욕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그들을 무질서하게 좋아하는 것을 금하신다. "우리가 몸을 위해 고기를 구함은 필요한 일일 뿐더러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정욕을 위하여 고기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노를 격동시킨다 - 시 78:18".(매튜 헨리) 육신을 위하여 '도모한다'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섬기는 모든 것을 말한다. 세상적인 정욕은 제어되어야 ..
"그러나 너희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에 '너희가 행하면' 이라는 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에게 부과된 의무이며 자의지적인 과업이다. 그러나 조심할 것은 이것이 신자 자신으로서 충분하다는 말이 아니다. 이것은 영으로써(through the Spirit) 이루어지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 우리가 실수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이 너희를 통하여'가 아니라 '너희가 영으로써' 라는 것이다(It is not, 'if the Spirit through you', but 'if ye through the Spirit'). 신자는 이 일을 시도함에 있어서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다. 성령은 이 중대한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의 책임수행을 면제시키기 위해 주어진 것이..
우리가 관심을 표명했던 것은 충분히 납득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성경을 읽고 또 이 가르침에 익숙해지기 위한 단면에 불과할 뿐, 실제로 말씀을 먹고 그것으로 변화받기에는 아직도 소원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룩함으로, 그것으로 유익을 얻고자 하는 자에게는 거룩한 마음이 요구된다.♡ 그 사람이 '영접'을 하기 이전에 말씀에 일치한 삶을 살아야 하며 변화를 받아야 한다. 사람이 거룩해지기 위하여는 죄가 없어져야 하며 자아는 부인되고 부패는 죽어야 한다. 우리가 여기에서 주장하고 있는 바는 성경과 일치된 순서로 예시되고 논증되었다. 우리는 '선을 사랑하기'(암 5:15) 전에 '악을 미워해야' 한다. 우리는 '좋은 일 하기를 배우기' 전에 '악행을 그만 두어야 한다'(사 1:16,17). 우리는 '그리스도를 ..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영적인 성장을 위해 제정하신 여러 가지 수단들을 사용하려 할 때, 세 가지 주요한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첫째, 그것들에 너무 많은 강조점을 두거나 의지하려는 경우이다. 그것들은 단지 '수단'에 불과할 뿐, 하나님이 그에게 복주시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둘째, 첫째와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경우로서, 이것들을 과소평가하거나 이것 이상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광신도들로서 자신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움들과는 초월해 있다는 것이다. 세째, 이것들이 하나님에게서만 온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경우이다. 확실히 그리스도인에게 번창을 가져오는 특수한 수단들에 관해선 견해가 다양하며, 이 주제에 관한 책을 저술하려는 사람들 중에도 방법..
우리는 앞서 영적인 성장의 주요한 수단에 관하여 이미 말했기 때문에 또 다시 한 장을 할애하여 제시한다는 것이 어쩐지 불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스도인 생활의 성공 여부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는 데 달려 있다면, 어찌하여 영적인 성장을 촉진시키는 수단들을 이토록 상세히 묘사할 필요가 있겠는가? '은혜를 새로이 공급받기 위해 구한다'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다. 이 '수단들'은 실제로 은혜가 우리에게 오는 통로 역할을 한다. 산상수훈에 나와 있는 마태복음 7:7을 설명한다 할 때 그것은 다음의 사실을 가리킨다. 신자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 신령하고 초자연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들은 은혜의 보좌 앞에서만 구해질 수 있지만 신자들이 ..
그리스도인의 외부적인 생활은 그렇게도 많은 요소가 작용하고 있지만 내부적인 생활은 그렇지 않다. 지식에 일치하지 않는 막연한 열정,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데 행동만 고무시키는 육적인 정력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소위 '자의적 숭배'(自己的 崇拜: 골 2:22)에 해당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한 '전승'이나 '미신'에 의한 것이며 '다른 교회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그렇게 많이 신뢰할 수 없고, 그의 거룩함을 그렇게 경외할 수 없고, 신령한 것을 그렇게 많이 알 수 없고, 전적으로 자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에게 헌신할 수 없다. 또한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사랑할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풍성한 은혜'가 필요하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떨어..
우리는 영적인 성장의 촉진을 논함에 있어서 일반적인 원리만을 개괄해 보았다. 우리는 이제 성장의 수단에 대해 좀더 세부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이것들을 다루기 전에 본장 초반부에서 강조했던 부분과 위단락을 연결시켜 보겠다. 거기서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인의 영적 성장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의존한다"고 말했다. 이제 이 사실은 새로 지음받은 영혼에게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어떤 신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굳게 잡고 거룩한 길로 계속 나아가며 전진하길 힘쓴다는 것은 순전히 그의 마땅한 의무이지만, 이 의무는 그가 위에서부터 능력과 지혜를 공급받을 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그에게 용기를 주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하나님은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성령으로 중생받으면 그는 '그의 길을 굳게 잡고' 나아갈 것이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길을 굳게 잡고 나가면 그것은 우리의 중생한 증거요 증표가 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고서 중생받았다고 위안받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 안에 시작하신 선행을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일을 그들이 '이루어 가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 사도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행 13:43)고 말했다. 이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세상의 불경건한 자들로부터 오는 여러 가지 도전으로 낙심치 말라고, 그리고 하나님의 은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