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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성장 68] 성장의 촉진 본문

성장시리즈/영적인 성장 (Spiritual Growth)

[영적인 성장 68] 성장의 촉진

En Hakkore 2024. 4. 4. 11:15

그리스도인의 외부적인 생활은 그렇게도 많은 요소가 작용하고 있지만 내부적인 생활은 그렇지 않다. 지식에 일치하지 않는 막연한 열정, 성경이 언급하지 않는데 행동만 고무시키는 육적인 정력이 있지만, 이런 것들은 소위 '자의적 숭배'(自己的 崇拜: 골 2:22)에 해당한다.

이러한 것들은 단순한 '전승'이나 '미신'에 의한 것이며 '다른 교회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그렇게 많이 신뢰할 수 없고, 그의 거룩함을 그렇게 경외할 수 없고, 신령한 것을 그렇게 많이 알 수 없고, 전적으로 자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에게 헌신할 수 없다. 또한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사랑할 수 없다.

이러한 능력을 얻기 위해 우리에게는 '풍성한 은혜'가 필요하다. 어떤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그래서 그의 영혼문제에 아무 관심도 없는 자들이다(엡 2:13). 또한 어떤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는 왔으되(막 12:34) 결코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행 26:18).

어떤 자들은 거기에 들어가기는 하되 별로 성장하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증거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수의 무리들 중에는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벧후 1:11)는 말씀에 해당하는 자들이다. 문맥이 보여주는 바와같이 그들은 '더욱 힘쓰는' 자들이며 모든 문제에 앞서 영혼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다.

주어진 은혜를 발전시키는 자들은 더 많은 은혜를 받는 자들이며(눅 8:18) 앞으로 오는 시대에 더 많은 상을 받을 자들이다.♡ 우리는 맨톤(Manton)의 다음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우리의 은혜의 분량에 따라 영광의 분량도 그러할 것이다. 가장 많은 은혜를 받은 자들은 가장 큰 그릇이라 할 수 있다. 다른 그릇들도 각각 그들의 크기에 따라 채워진다"♡

우리는 어떤 청교도들이 이 점에 관해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견해를 들어 인용할 수 있다. 지옥에 버림받은 자들의 형벌의 종류가 다양하듯이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의 종류도 각기 다르다. 왜 그렇지 않은가?

높은 곳에 있는 천사들 중에도 각기 상당한 차이가 있다(엡 1:21 등). 하나님께서 지상에 있는 그의 백성들에게 성령의 은사, 혹은 은혜를 각각 다르게 나눠 주셨다는 견해에 아무도 반박할 수 없다. 성경은 이것을 아주 분명하고 풍성하게 답변해 준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한대로 상을 주시며 우리가 그의 은혜를 발전시킨 것에 따라 면류관을 입혀 주신다는 것이다.♡ 추수할 것은 씨를 뿌린 데 따라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다(고후 9:6, 갈 6:8). 그러나 모든 면류관은 주님의 발 앞에 던져질 것이지만 그 면류관의 종류는 어느 면으로 보나 같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더 많은 은혜를 얻고 또 그것을 발전시키기 위해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많은 은혜를 구하며 또 그 은혜를 얻기 위해 더욱 힘써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는 상당히 많이 있다. 만약 어떤 군주가 그의 부하들 중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 초대했다면,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시시한 것들을 구했다면 그 군주는 과히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천상의 주권자에게 하찮은 것들을 요구한다면 그에게 영광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지 말고 왕 앞에 나아가서 큰 것을 요구하자".그는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적어도 그가 말씀하셨을 때에는 다 뜻이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를 초청하셔서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마시고 많이 마셔라"(은혜의 샘에서)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그의 말씀을 먹지 않는가? 하나님은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며"(벧전 5:10) "그의 은혜의 풍성함으로"(엡 1:7) 우리에게 나타내셨다. 그분이 필요를 절감하고 간절히 찾고자 하는 자들을 위하시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은혜를 베푸시겠는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고후 9:8). 만약 그가 이것 해주시기를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셨겠는가?

우리는 물론 다음과 같은 난제를 예상한다. 내가 깨닫기에 영적인 성장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은혜를 새로이 믿음에 의존한다는 것이며, 또 그것을 얻기 위해 더욱 부지런히 확신을 갖고 그래야 함은 나의 책임이요, 의무라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렇게 했는데 은혜가 넘치기는 커녕 오히려 축소되었으며, 성장은 커녕 퇴보했으며, 죄를 죽이기는 커녕 정욕이 이전보다 더 살아났다는 데 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다음과같이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당신은 마땅히 구해야 할 바를 진지하게 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찾고 구하는 것으로 족하지 않다. 시종일관 끈질기게 두드리는이 '두드림'이 있어야 한다(마 7:7). 그것은 마치 야곱의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않겠나이다"라는 말처럼(창 32:26) 하나님과의 거룩한 투쟁을 의미한다.

둘째, 당신의 요구를 응답해 주실 때, 하나님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사 30:18). 그는 기다리시며 당신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그는 우리에게 인내심과 끈질김을 요구하신다. 얻기에 힘든 것은 그만큼 쉽게 얻어지는 것보다 가치가 많다.

셋째, 우리가 명심해야 할 바는 한 영혼에 은혜가 주입됨으로 그 즉시 육체와는 원수가 되고, 은혜가 점점 역사를 많이 할수록 그것은 죄를 거스린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오셨을 때에도 헤롯을 비롯한 온 세상이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한 영혼에 들어오셔도 본래적으로 거하던 모든 죄는 그를 반대하여 소동을 한다. 왜냐하면 그는 그것과 원수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상이 부패로 채워질 때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은혜가 더 많이 자라날수록 그것에 대한 필요성 또한 더 커지는 법이다.

네째, 하나님은 언제나 친절하게 응답하시지 않는다. 당신은 성결을 구하였으나 더 많은 빛으로 응답하기도 한다.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했으나 그것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받는다. 당신은 정욕을 이기게 해달라고 구했으나 겸손의 은혜를 받아서 당신 자신을 더욱 심각하게 미워하기도 한다. 당신은 주님께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구하였지만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은혜를 주기도 하신다.♡

Arthur W. Pink 영적인 성장 p175